김대중 전 대통령은 납치, 살해 위협, 연금, 구속과 투옥 등으로 점철된 고난의 삶을 살았다. 한마디로 한국 현대사의 암울했던 시간을 고스란히 ‘살아냈다’. 목숨마저 위태로웠던 30여 년에 가까운 고난의 시기를 그가 의연하게 겪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민주화를 위한 크나큰 갈증과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랑과 열망을 편지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1977년 5년형을 언도받고 진주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러다 지병이 깊어져 서울대병원으로 이감되어 치료받다가 1978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특별사면 1호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1980년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해 또다시 고초를 당한다. 이른바 ‘내란음모’ 혐의로 군법회의에 기소된 사건이다. 군 검찰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이는 그대로 선고된다. 그는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1981년 무기형으로 감형되어 청주교도소로 이감된다. 그리고 1982년 12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다.
이 책은 이 시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과거 ‘김대중 옥중서신’이란 제목으로 단권본으로 출간된 바 있지만,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김대중 마지막 일기』 등 미공개 자료를 추가 수록하고 장정을 새로 하여 펴냈다.
이 책은 인간 김대중과 이희호의 사사로운 고백이기도 하지만, 민주화투사 김대중과 인권운동가 이희호의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아가 시대의 불의에 맞서 분연히 일어났던 행동이자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애틋함을 오롯이 담아낸 우리 현대사의 연서戀書이다.
Contents
추천의 글 | 한승헌
영문판 서문 | 데이비드 맥칸
스웨덴어판 서문 | 아웅산 수지
1장 핍박 그리고 자유
(진주교도소에서 쓴 편지/ 1977)
우리는 동행자입니다(1977년 4월 29일)
하느님이 나에게 특별히 마련한 은총(1977년 5월 28일)
카이사의 것과 하느님의 것(1977년 6월 23일)
신앙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1977년 8월 29일)
고난을 통한 연단(1977년 9월 20일)
역사 속의 오늘의 사명(1977년 10월 25일)
각국 수도에 관한 고찰(1977년 11월 29일)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에 대한 몇 가지 소감(1977년 12월 17일)
2장 못으로 눌러쓴 메모
(서울대병원에서 쓴 편지/ 1978)
비폭력 평화투쟁(1978년 7월 20일~8월 30일)
못으로 눌러쓴 자유(1978년 9월 1일~9월 28일)
민주 회복의 열망(1978년 10월 1일~11월 8일)
3장 시대의 깃발
(청주교도소에서 쓴 편지/ 1980~1982)
죽음 앞에서의 결단(1980년 11월 21일)
사랑 없이는 평화도 화해도 없다(1980년 11월 24일)
누구를 단죄할 수 있겠는가(1980년 12월 7일)
무리도 말고 쉬지도 말자(1980년 12월 19일)
부활에의 확신(1981년 1월 17일)
고난에 찬 새로운 삶의 출발(1981년 1월 29일)
죽음의 고비 뒤에 오는 고독(1981년 2월 21일)
최대의 선물인 자유(1981년 3월 19일)
대전교도소에서 온 큰아들의 편지(1981년 4월 22일)
은혜와 감사(1981년 5월 22일)
성자들이 가는 길(1981년 6월 23일)
토인비에게 배우는 도전과 응전(1981년 7월 29일)
미래의 삶을 위하여(1981년 9월 23일)
우리 민족의 장점과 단점(1981년 9월 30일)
개인의 구원과 사회적 구원은 하나(1981년 10월 28일)
위대한 선각자 원효, 율곡, 수운(1981년 11월 27일)
예수 탄생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1981년 12월 16일)
현대사회의 도덕적 위기와 그 원인(1982년 1월 29일)
조선왕조의 자기 형벌(1982년 2월 23일)
운명을 사랑한다(1982년 3월 25일)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1982년 4월 26일)
인류문명과 우리의 과제(1982년 5월 25일)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1982년 6월 25일)
간디는 예수의 참 제자(1982년 7월 27일)
민중의 역사(1982년 8월 25일)
경제발전의 핵심은 사람(1982년 9월 23일)
한반도의 평화와 4대국(1982년 11월 2일)
철학자들의 정치관 비판(1982년 11월 26일)
민족을 위한 기도(1982년 12월 15일)
옥중단시
세 아들의 서신
김대중 마지막 일기
Author
김대중
1924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서 태어났다. 하의공립보통학교, 목포제일보통학교를 거쳐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치러진 제5대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으나 5.16쿠데타로 인해 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했다. 1963년 민주당 소속으로 목포에서 제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70년에는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유신 반대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1973년에는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당해 수장당할 뻔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1980년에는 내란음모사건 혐의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85년 귀국했지만 가택연금이 반복되었다. 1987년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2년 민주당 제14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출마한 대통령 선거에서도 또다시 낙선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1993년 귀국하여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설립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 2000년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6.15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햇볕정책을 펼쳐 남북관계와 평화통일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 2000년에는 남북관계 진전 및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헌신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09년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뒤로 하고 급성호흡부전증후군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던 중 8월 18일 끝내 서거했다. 지은 책으로는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중 참여 경제론》, 《나의 삶 나의 길》 등이 있다.
1924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서 태어났다. 하의공립보통학교, 목포제일보통학교를 거쳐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61년 치러진 제5대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으나 5.16쿠데타로 인해 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했다. 1963년 민주당 소속으로 목포에서 제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70년에는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유신 반대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1973년에는 일본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납치당해 수장당할 뻔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1980년에는 내란음모사건 혐의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1985년 귀국했지만 가택연금이 반복되었다. 1987년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2년 민주당 제14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출마한 대통령 선거에서도 또다시 낙선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1993년 귀국하여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설립했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 2000년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6.15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햇볕정책을 펼쳐 남북관계와 평화통일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 2000년에는 남북관계 진전 및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헌신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09년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뒤로 하고 급성호흡부전증후군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던 중 8월 18일 끝내 서거했다. 지은 책으로는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중 참여 경제론》, 《나의 삶 나의 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