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프란체스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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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8/03/30
Pages/Weight/Size 125*195*30mm
ISBN 9788932908137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세계각국소설
Description
프란체스코는 1180년대 초에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소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포목상을 하는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 어머니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때는 값비싼 옷을 즐겨 입고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며 당시의 보통 젊은이들처럼 부유한 상인이나 기사가 되는 포부를 지니기도 했지만 선천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는 그 일생이 모든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가 전교(傳敎)를 시작할 때 열두 사도를 불러 세속의 모든 것을 멸시하고 가난과 고행 속에 자신을 따르라 한 것과 같이, 프란체스코가 형제회를 세울 때에도 지극히 고귀한 가난에 아낌없이 자신을 투신하는 열두 동료를 선택했다. 그리고 1224년 9월 알베르나 산에서 오상(五傷)을 받았다.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상(像)이 된 그는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중부 지방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가는 곳마다 성인으로 칭송을 받았다. 그는 항상 기뻐 즐거워하며,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구세주의 오상 속에 한적한 곳을 찾아 오랫동안 머무르며 온전하게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곤 했다.

1226년 봄 그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간곡한 유언을 받아쓰게 했다. 그는 모든 형제들이 그들 가운데서는 사랑을, 가난 부인에게는 충실을, 교회의 성직자들에게는 존경과 순종을 실천하라고 당부한 뒤 그들을 축복했다. 그는 초창기의 완전한 가난, 단순, 겸손을 회상하며 특히 육체노동에 대한 기쁨을 잊지 않았고, 모든 형제들이 어떤 일에든 종사하도록 하고 일할 줄 모르는 형제들은 일을 배우도록 가르쳤다. 동냥은 일의 보수가 충분치 못할 때 마지막 수단으로 해야 하며 애긍을 청함에 있어서도 필요 이상으로 청하거나 이용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다른 불쌍한 사람들이 그들의 몫을 빼앗기지 않도록 언제나 필요한 것보다 더 적게 받도록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절도 행위라고 말하곤 했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은 구원의 특별한 방법이며, 겸손의 근원이며, 모든 완전함의 뿌리이며, 결실은 보이지 않으나 풍성한 밭에 감추어진 보물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얻을 수 없는 것은 그것에 대한 사랑으로 포기해야 하며 항상 〈나그네나 순례자〉같이 살 것을 강조했다.

카잔차키스는 성 프란체스코를 <중세의 마지막 영혼이었고, 르네상스 최초의 영혼>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추악함과 부정(否定)과 불의로 속속들이 물든 현대에서는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성 프란체스코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르네상스의 첫 영혼이 되길 바랐다.

'열린책들'은 카잔차키스 사망 50주기를 맞아서 2008년 3월 30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전 30권을 완간했다. 이 전집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리스인 조르바』 외에도 카잔차키스 문학의 사상적 토대가 된 초기작부터 후기의 걸작들, 그 외 서사시, 희곡, 여행기까지 모두 포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Contents
머리말
성자 프란체스코 1
Author
니코스 카잔차키스,김영신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자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오뒷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자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오뒷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