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과 사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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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8/10/30
Pages/Weight/Size 148*210*20mm
ISBN 9788932111292
Categories 종교 > 천주교
Description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회고하며 쓴 어머니와 형님 이야기, 사제가 되기까지의 갈등, 발표되지 않은 기도와 시들, 먼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사람들에 대한 회고, 인터뷰, 강론 등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과 사랑에 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물질적 성장만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위정자들의 비민주적 폭거에 든든한 우산이 되어주고, 시대의 징표를 읽어 동시대인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어, 여론 조사에서 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꼽혔던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을 되새겨 볼 수 있다. 특히 이 개정판에는 새로이 추가된 인터뷰와 그 후의 강론, 기고 글 등을 더해져 그동안 잘 몰랐던 김수환 추기경의 개인적인 면모를 더 깊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간행의 말씀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님

제1장 어머니, 나, 그리고 형

어머니, 우리 어머니 | 지금도 주님께 무릎 꿇어 용서를 빈다 | 왜 신부가 되었는가? | 나의 좌우명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 나의 형님, 김동한 신부

제2장 기도, 시

자기 이름을 상실한 사람들 | 나의 기도 | 하느님의 자비 | 당신의 생명을 모두 함께 누리게 하소서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 부부의 날 기도 | 기도는 나의 생명이다 | 인간성의 회복을 위하여 | 루르드 동굴 아래서 | 하느님의 사랑 | 수도자, 그대는 | 침묵은 밤이다 | 주여, 평화를 주소서 | 주님의 평화 | 월이 다 가기 전, 성모님께 찬미를

제3장 오직 당신 것이오니 도로 받으시옵소서

하느님의 사람아, 노래를 들려 다오! | 겨레를 가족보다 더 사랑하신 장준하 선생 | 한국 가톨릭 사상의 선구자 윤형중 신부님 | 이 겨레, 이 땅을 사랑한 이방인 | 무슨 말로 그들의 넋을 위로할지 모릅니다 | 운석 선생님의 영복을 빌면서 | 박종철 군의 죽음을 민주 제단에 바친다 민주의 새벽을 연 성직자 | 북만주에서 년 만에 돌아오신 김선영 신부님 | 어디 가면 너를 볼 수 있니 | 밀알이 썩어 | 주님의 은혜에 보답한 생애

제4장 인터뷰

인간과 사랑 |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 힘으로 눌러서는 안 된다 | 정권에 고언(苦言) 땐 밤새 고뇌 | 무소유의 정신 | 교구장직을 떠나면서 | 서울 대교구장 년 회고 | 새 천 년의 의미

약력
Author
천주교 서울대교구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안동천주교회 주임(1951), 김천 성의중고등학교장(1955), 주간 가톨릭시보사 사장(1964)을 거쳐 1966년 44세 때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되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2009년 2월 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온 추기경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 길을 제시해왔다. 추기경으로서의 삶은 그에게 영광인 동시에 ‘행복한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로 ‘신부가 된 것’을 꼽았고, “나는 행운아였다”라고 고백할 만큼 이 시대의 가장 사랑받은 목자였다. 평생을 나눔과 사랑의 사회활동을 통해 항상 살아 있는 시대정신을 보여주었다.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 실천가로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
1922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사제품을 받았다. 안동천주교회 주임(1951), 김천 성의중고등학교장(1955), 주간 가톨릭시보사 사장(1964)을 거쳐 1966년 44세 때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되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나 2009년 2월 16일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온 추기경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면서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바른 길을 제시해왔다. 추기경으로서의 삶은 그에게 영광인 동시에 ‘행복한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로 ‘신부가 된 것’을 꼽았고, “나는 행운아였다”라고 고백할 만큼 이 시대의 가장 사랑받은 목자였다. 평생을 나눔과 사랑의 사회활동을 통해 항상 살아 있는 시대정신을 보여주었다.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 실천가로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