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사상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를 쉽고 자연스러운 한글로 풀어 옮기면서, 각 편, 장, 절을 숫자 기호로 표시하고, 각 절에 해당하는 주자의 『논어집주』를 함께 실어 그 의미를 깊고 풍부히 하였다.
유교의 이론을 집대성한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그의 어록이 담긴 『논어』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이다. 『논어』가 동양 문화와 사상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지대하여, 동아시아 사회의 최고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논어』는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형식상 전 2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로 공자의 말과 제자들과의 문답, 공자와 당시 사람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 제자들끼리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논어』는 한 사람이 기술한 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토론하고 대화한 것을 기록한 책이지만 공자 사상이 가장 잘 집약되어 있는 글이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