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 제1∼5호

1931년 창간 (1931.3월∼8월) - 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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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5/31
Pages/Weight/Size 158*230*40mm
ISBN 9791168870673
Categories 인문 > 독서/비평
Description
《개벽》의 뒤를 이은 종합지 혜성 1931. 3

《혜성(彗星)》은 1931년 3월 1일자로 창간된 시사종합지인데, 이는 1926년 8월 《개벽》이 통권 72호로 강제 폐간당한 지 5년 만에 태어난 개벽사의 대표적인 잡지이다. 물론 《개벽》이 없어진 자리에 《별건곤》이 나왔지마는 그것은 《개벽》의 성격과는 다른 대중잡지이다. 그래서 《개벽》이 없는 개벽사는 주인이 자리를 비운 듯 허전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차에 새로운 빛을 내며 혜성과 같이 나타난 잡지가 《혜성》인 것이다.

당시 개벽사의 인맥은 《별건곤》항에서 언급한 바 있지마는, 초창기의 쟁쟁했던 동인들은 순직·요절·횡사·와병(臥病) 등으로 그 모습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동학혁명백주년기념논총(東學革命百周年記念論叢)》 〈하(下)〉(P.398) (1994) 《혜성(彗星)》 항에서는 이렇게 썼다. “당시 개벽사를 전면에 나서서 이끌어간 인물은 차상찬(車相瓚) 외에 달리 없었다. 그리고 개벽사를 마지막까지 온갖 역경을 감내하며 지켰던 인물도 차상찬이었다. 그만큼 차상찬은 개벽사와 운명을 함께 했다.” 그러니 《혜성》의 창간은 《개벽》의 복간을 보는 듯 감격했으리라.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차상찬, 인쇄인 이학중(李學仲), 인쇄소 조선인쇄(주), 발행소 개벽사(서울·경운동 88), A5판 156면, 정가 30전이다. 판권장 면에 있는 〈혜성여적(彗星餘滴)〉에 보면 “우리 《혜성》은 물론 핼리 혜성과 같이 지구를 깨뜨리지는 않지마는, 당당한 언론의 권위로 이 세상에 완고몽매하고 부패추악한 사람의 두뇌를 깨뜨려서 일신한 새 사람 새 사회를 만드는 데는 핼리성보다도 더 위대한 힘이 있을 줄로 믿는다. 〈차(車)〉” 라고 썼다. 이렇게 창간된 《혜성》이건만 제13호(1932. 4) 까지 내고 《제1선》으로 개제 발행했으나, 《제1선》또한 오래 가지 못하고 1933년 3월 통권 10호로 종간되었으니, 두 잡지는 총 23호로 막을 내렸다.

맨 첫머리에다 〈대협동기구(大協同機構) 조직(組織)의 필요(必要) 가능(可能) 여하(如何)? 민족적(民族的) 당면문제(當面問題) 이동대좌담회(移動大座談會)〉라는 제목을 그야말로 주먹 만한 특호활자로 크게 박고는, 조선 사회지도자 12명이 각자의 의견을 원고지(200자) 3,4장에서 6,7장으로 썼다. 창간사에서는 ‘조선 및 조선사람, 조선의 인텔리겐챠’를 들먹였고, 또 이 머리기사에서는 이처럼 거창한 타이틀을 붙였으니, 총독부의 검열관 나리들이 이 잡지를 곱게 봐 주겠는가.

필진 12명 중, 필자가 알기로는 3·1운동 33인의 지도자인 한용운(韓龍雲), 박희도(朴熙道), 동아일보사 사장 송진우(宋鎭禹), 변호사 이인(李仁), 여성운동가 정칠성(丁七星) 등이다. 이 무렵의 우리 잡지들은 집필자의 직함을 밝히지 않은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6·25 전후부터 이름 옆에 직함을 달거나 기사 뒤에 집필자를 소개하게 되었다. 필자를 밝히지 않은 글은 후세인들이 읽기도 불편할 뿐 아니라 그 값어치 또한 많이 이지러질 것이다.
Contents
1931년 창간 (1931.3월∼8월)
1호부터 5호
Author
차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