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천계송언해 1~2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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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1/31
Pages/Weight/Size 195*265*20mm
ISBN 9791168875876
Categories 종교 > 불교
Description
조선전기 승려 학조가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을 국역하여 1482년에 간행한 번역서.

상하 2권 2책. 을해자 주자본(鑄字本).

당나라 현각(玄覺)의 「증도가(證道歌)」 1수와 「선종오수원지(禪宗悟修圓旨)」를 위정(魏靖)이 모아 『영가집(永嘉集)』이라 하였는데, 이것을 송나라 선사 남명천(南明泉)이 구마다 나누어 계송(繼頌)한 것이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이고 이를 언해한 것이 『남명집언해』이다.
세종이 직접 『삼가해(三家解)』의 초고를 만들고 「남명계송」 30여수를 번역한 다음 수양대군(뒤의 세조)에게 나머지를 마저 번역할 것을 명하였으나 실행을 보지 못하였다.
1482년(성종 13) 세조의 비 자성대왕대비(慈聖大王大妃)가 이 일을 완성하고자, 학조에게 세종이 30여수를 번역한 「남명계송」을 마저 번역할 것을 명하였다. 마침내 이 일이 이루어져서 500부를 간행하여 널리 유포하게 한 것이 『남명집언해』이다.

이 책의 상권에는 오용(吳庸)의 서문이 언해와 함께 실려 있고, 그뒤 토를 단 칠언사구체의 한문송·정음번역문·정음주해문의 순서로 156수의 노래가 실려 있다. 하권은 164수의 노래를 싣고 이어서 축하하는 내용의 후서(後序)가 언해되어 있으며, 끝에 한계희(韓繼禧)와 강희맹(姜希孟)의 발문이 있다. 이 발문은 『금강경삼가해』의 발문과 똑같다.
이 책은 ‘증도가남명계송’·‘남명계송’·‘증도가계송’·‘증도가’·‘가가천송(嘉歌泉頌)’ 등의 다른 이름이 있으나, 후대에 와서 ‘영가대사증도가남명천선사계송’의 약칭에다가 언해란 말을 붙여 이루어진 ‘남명집언해’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원간본은 서울대학교 가람문고(嘉藍文庫)와 이겸로(李謙魯)의 소장이며, 권하(卷下)의 영본(零本)은 고려대학교 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만송문고(晩松文庫), 그리고 김석하(金錫夏)가 소장하고 있는데, 중간본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헌의 표기법상의 특징은 한자음이 동국정운식(東國正韻式) 한자음으로 표기된 것이며, ‘ㅆ, ㆅ’ 등의 각자병서(各自?書)는 한자음 표기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ㅳㅡㅁ, ㅿ?, ·’가 쓰이고 있으며 ‘ㆆ’은 한자음에만 사용되었다. 따라서 ‘ㅎㆍㅭ시라’ 등은 보이지 않고 ‘ㅎㆍㄹ시라’로 나타난다. 그리고 방점이 사용되었으며 ‘ㅸ’은 보이지 않는다.

삽입자음표기는 ‘ㅅ’으로 통일되어 있다. 종성표기에 ‘ㅈ·ㅊ·ㅌ·ㅍ’이 보이지 않으나 ‘ㅂㆍㅿ아도, ○이리라’처럼 ㅿ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뒤에 오는 음절이 모음으로 시작될 때 ㅳㅡㅁ은 ‘ㄷㅏㅇ다ㅇㅣ’와 같이 초성에 내려쓴 경우와, ‘ㅂㅓㅇ으러’와 같이 ‘ㅳㅡㅁ, ㅇ’으로 쓴 두가지 경우가 다 보인다. 이 책은 1972년과 1973년에 『남명천계송언해(南明泉繼頌諺解)』라는 이름으로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상권과 하권을 영인한 바 있다.
조선전기 금강산유점사, 해인사 대장경판당 등을 중창한 승려. 역경승.

본관은 안동(安東). 속성은 김씨. 호는 등곡(燈谷)·황악산인(黃岳山人). 아버지는 김계권(金係權)이다. 신미(信眉)·학열(學悅) 등과 함께 선종의 승려로서 세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여러 고승들과 함께 많은 불경을 국어로 번역, 간행하였다.

학덕이 뛰어난 당대의 명승이었으며 웅문거필(雄文巨筆)의 문호로 칭송되었다. 왕실의 귀의를 받아 세조 이후 중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불사를 일으켰다. 1464년(세조 10)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서 임금을 모시고 신미·학열 등과 함께 대법회를 열었다.

1467년 왕명으로 금강산유점사(楡岾寺)를 중창하였고, 1488년(성종 19)인수대비(仁粹大妃)의 명으로 해인사 중수 및 대장경판당을 중창하였다. 1500년(연산군 6) 왕비의 명으로 해인사의 대장경 3부를 간인(刊印)하고 그 발문을 지었으며, 1520년(중종 15) 왕명으로 다시 해인사 대장경 1부를 간인하였다.

그가 국역한 불전(佛典)을 살펴보면, 『지장경언해(地藏經諺解)』가 초기에 언해된 것으로 추정되며, 수양대군에 의하여 완성된 『금강경삼가해언해(金剛經三家解諺解)』를 자성대비(慈聖大妃)의 명에 의하여 교정, 인출하였다. 한편, 1476년에는 『천수경(千手經)』을 언해, 교정하였으며, 1482년에는 세종 때부터 시작되었다가 중단된 『증도가남명계송(證道歌南明繼頌)』을 역시 자성대비의 명으로 번역, 완성하였다.

그밖에 다소 불분명하지만 인수대비의 명에 의하여 언해, 인출되었다는 점과 그의 발문이 첨부되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오대진언(五大眞言)」·「불정심다라니(佛頂心陀羅尼)」·「진언권공(眞言勸供)」 또한 그의 번역일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