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집안의 권유로 아이젠슈타트 초급 군사 학교, 빈 사관 학교에서 수학하였으나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기계 공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브륀 공과 대학교에 입학한다. 수학하면서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메테를링크, 에머슨 등의 작품을 읽었다. 이후 베를린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첫 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Die Verwirrungen des Zoeglings Toerleß, 1906)을 발표하여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08년 같은 대학에서 에른스트 마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철학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하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1930년과 32년 평생의 역작 『특성 없는 남자』(Der Mann ohne Eigenschaften) 1, 2권을 출간했으나 1938년 나치 정권에 의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 이후 『특성 없는 남자』를 완성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주했으나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미완성인 채로 제네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평단 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특성 없는 남자』는 아돌프 프리제가 유고를 정리한 전집이 출간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지금은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로 꼽히고 있다.
이들 작품 외에 단편집 『합일』(Vereinigungen) 『세 여인』(Drei F... rauen), 희곡 『몽상가들』(Die Schwaermer), 문집 『생전의 유고』(Nachlass zu Lebzeiten)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집안의 권유로 아이젠슈타트 초급 군사 학교, 빈 사관 학교에서 수학하였으나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기계 공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브륀 공과 대학교에 입학한다. 수학하면서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메테를링크, 에머슨 등의 작품을 읽었다. 이후 베를린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첫 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Die Verwirrungen des Zoeglings Toerleß, 1906)을 발표하여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08년 같은 대학에서 에른스트 마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철학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하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1930년과 32년 평생의 역작 『특성 없는 남자』(Der Mann ohne Eigenschaften) 1, 2권을 출간했으나 1938년 나치 정권에 의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 이후 『특성 없는 남자』를 완성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주했으나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미완성인 채로 제네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평단 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특성 없는 남자』는 아돌프 프리제가 유고를 정리한 전집이 출간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지금은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로 꼽히고 있다.
이들 작품 외에 단편집 『합일』(Vereinigungen) 『세 여인』(Drei F... rauen), 희곡 『몽상가들』(Die Schwaermer), 문집 『생전의 유고』(Nachlass zu Lebzeite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