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고교시절에 오언절구와 칠언율시를 배우면서부터 자연스럽게 韓詩를 접하고 써보기 시작했다. 어쩌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한자로 표현해보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다가 나이 오십 후반에 늦게야 ‘인류역사상 최고의 명문장’인 [단군세기 서문]을 만나서 그 문장을 읽고 읽어 韓字 794자로 된 행촌 이암선생의 원문장을 암송하게 되었다. 이후 교우관계를 이어가는 장소인 음식점의 냅킨에, 그리고 회사 사무실에서 짬을 내어 이면지에 단군세기 서문을 암송하여 써보는 경험은 정식으로 한문공부를 하지 못한 필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우리 한민족 최초의 역사기록인 [서효사(신지비사)], 우리조상들의 마음수행상 기본서인 [삼일신고] 등을 머릿속에 집어넣어 암송하는 재미를 즐기다가 칠언율시를 떠올리고는 ‘한시를 써서 모아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의 퇴근 후 시간에는 한시를 쓰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시가 어느 정도 분량이 되어 그것을 묶어내게 된다면, 그 제목을 [월수금한시]로 하자는 소박한 기획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오언절구보다는 칠언율시를 선호한다. 한시에 있어서 비전문가인 필자의 실력으로 다섯 자로써 어떤 정서나 현상을 표현하기란 고단한 작업이어서 그래도 두 자를 더 쓸 수 있는 칠언율시로 자연스레 방향을 잡게 되었다. 그런데 칠언율시의 규칙이 운율을 맞춰야 한다는 것과 일곱 자 여덟 행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도 필자의 비전문성이 알차게 발휘되었다. 운율은 韓字의 음 중 초성을 제외한 음이 유사한 소리가 나면 되는 것으로 하고, 영업시간 제한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음식점의 분위기나 필자의 醉氣정도 등에 따라 혹은 네 행으로도 칠언율시가 됨을 스스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한시를 잘 썼다, 한시가 어떠하다 하는 평가는 일체 황송한 느낌일 수밖에 없다. 한시를 이틀(수금) 혹은 사흘(금월)에 하나씩 쓴다는 것은 사실 고통이다. 이 머리고통(心苦)은 기쁘지도 않고 다른 이들에게 권할 만한 일도 아니다. 그래도 환갑을 넘긴 필자가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인가 남길 수 있는 작업으로서, 그리고 소주 한 잔 정도의 즐거움은 남는 혼자즐김(孤樂)으로서, 한시를 구상하고 표현해보는 것이, 현재에도 진행 중인, 유일한 선택일 뿐이다. 이제 한시가 백 편을 넘고, 묶어서 인쇄해보자는 소박한 기획을 실천할 단계에 이르러서는, 그래도 시집(詩集)인데 한시가 만들어진 날짜순으로 나열하여 그냥 인쇄하여 묶어낸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감흥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먼저 한시의 각 편을 주제 또는 문제의식 등의 기준으로 분류하였다. 그 분류를 목차삼아 시집의 앞부분에 표시해두면, 읽는 사람이 정서나 주제를 먼저 보고 시편을 선택하여 해당 쪽을 펴봄으로써 나름의 감상을 가질 수 있도록 目次부분에 신경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