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ng soon

시남집 4

$34.02
SKU
9791187638957

 

COMING SOON [판매 예정] 상품입니다.

[판매 예정] 상품은 출간일(Publication Date) 이후 주문이 가능합니다.

 

▷출간일 이후에도 아직 [판매 예정]으로 보이는 경우 info@kbookstore.com 으로 문의주세요.

주문 가능 여부를 확인 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COMING SOON [판매 예정] 상품입니다.

[판매 예정] 상품은 출간일(Publication Date) 이후 주문이 가능합니다.

* 출간일 이후에도 아직 [판매 예정]으로 보이는 경우 info@kbookstore.com 으로 문의주세요.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Wed 05/22 - Tue 05/28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Fri 05/17 - Tue 05/21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3/12/29
Pages/Weight/Size 152*225*35mm
ISBN 9791187638957
Categories 소설/시/희곡 > 고전문학
Description
유계(?棨, 1607-1664)의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유계는 송시열(宋時烈)ㆍ송준길(宋浚吉)ㆍ윤선거(尹宣擧)ㆍ이유태(李惟泰)와 함께 충청(忠淸) 산림(山林) 오현(五賢)으로 일컬어진다. 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영향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변화가 발생했던 시기이며, 사회경제 방면의 여러 정책과 예론에 대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충돌했던 때이다. 유계는 이 시기에 현실지향적인 측면에서 사회 모순을 개선하며 학문적으로 오랜 기간 자신이 축적한 경세론과 사회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방향을 모색하였다. 또한 역사와 경전 및 예설(禮說)에 조예가 있어 우리나라의 역사와 선현의 예설 등을 참고하여 《여사제강(麗史提綱)》ㆍ《가례원류(家禮原流)》를 편찬하였다. 주자(朱子)의 경전 및 《가례(家禮)》를 바탕으로 평생 경학과 예학에 몰두하고 정리하는 일에 힘쓰고 많은 저작을 남겼다. 아울러 유계의 《시남집》에는 예학과 경세학, 사학 및 문학에 걸쳐 괄목할 만한 글이 남아 있는데 그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남집》에는 그가 추구한 사회개혁 정책과 관련한 상소문과 예론, 경세론 등 유계의 학문과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적지 않은 글이 실려 있다.

《시남집》은 원집(原集) 24권, 부록(附錄) 3권 합 11책과 별집(別集) 9권, 부록(附錄) 합 4책으로 총 15책이다. 서문은 송시열이 썼고 윤증(尹拯)이 발문을 썼으며, 별집 말미에는 유노환(兪魯煥)의 별집 발문이 실려 있다.

17세기 중후반 조선은 양란(兩亂) 이전부터 내려오던 폐단과 양란의 영향으로 나라의 재정과 백성의 삶이 더욱 피폐한 상태였다. 유계가 활동하던 시기는 당대 시대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이 요구되던 때였고,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유계의 문집에는 경세사상과 민생에 대한 사회 정책 등의 고민이 여실이 담겨 있다.
Contents
일러두기

시남집 제16권

잡저雜著
독서쇄설 260조 讀書?說 二百六十條

시남집 제17권

잡저雜著
강거문답 江居問答

시남집 제18권

서序
목계로 가는 신군필을 전송하는 서문 기묘년 送申君弼之木溪序 己卯
기계 유씨 족보 서문 杞溪兪氏族譜序
화순 홍대이가 소명을 받고 북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는 서문 무자년 送洪和順大而承召北歸序 戊子
생질 윤후로를 전송하는 서문 送尹甥後老序
《당시유선》 서문 唐詩類選序
《간양록》 서문 看羊錄序

시남집 제19권

기記
산천재기 임오년 山泉齋記 壬午
강대기 과작?무자년 强臺記 課作?戊子
정관당기 무자년 靜觀堂記 戊子
무안 송림서원 중창기 務安松林書院重創記
만성재기 晩省齋記
약재기 藥齋記
무안 객사 동상방 중창기 務安客舍東上房重創記
보민당기 기축년 保民堂記 己丑
동래 충렬서원기 東萊忠烈書院記
황산기유 黃山記遊
부용당기 芙蓉堂記
교산정사기 橋山精舍記
정우정기 淨友亭記
이산향교 명륜당기 尼山鄕校 明倫堂記
문회당기 文會堂記

시남집 제20권

설說
다리 부종을 치료하는 설 정축년 治脚腫說 丁丑
윤윤의 자설 尹?字說

변辨
도홍경이 《주역》은 주석하고 《본초》는 주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변 陶弘景註周易不註本草辨
《의맹》에 대한 변 과작 疑孟辨 課作

논論
넓적다리를 베는 것에 대한 논 기사년 割股論 己巳
장량이 시황을 저격한 것에 대한 논 기사년 張良狙擊始皇論 己巳
맛있는 술을 싫어한 공로가 홍수를 평정하는 것보다 크다는 논 무인년 惡旨酒之功大於平?水論 戊寅
왕언장에 대한 논 갑신년 王?章論 甲申
맹자가 노자를 배격하지 않았다는 논 정해년?과작 孟子不排老子論 丁亥?課作

시남집 제21권

발跋
실록청 계병 발문 實錄廳?屛跋
《두주》의 뒤에 쓰다 書杜註後
김중문의 유산시권 뒤에 쓰다 題金仲文遊山詩卷後
권수부의 〈유산록〉 뒤에 쓰다 題權秀夫遊山錄後

찬贊
빙호선생 찬 과작 氷壺先生贊 課作
동파선생 사진 찬 東坡先生寫眞贊
박비경 제봉의 거문고 찬 朴比卿霽峯琴贊

악장樂章
대비전에 존호를 올리는 악장문 사제곡 신축년 大妃殿上尊號樂章文 思齊曲 辛丑

표전表箋
당나라 금오장군 장만복이 조정에 강직한 신하가 있음을 하례하는 표문을 의작하다 과작 擬唐金吾將軍張萬福賀朝廷有直臣表 課作
동지에 하례하는 전 대작 冬至賀箋 代作

상량문上梁文
회덕 숭현서원 중창 상량문 을유년 懷德崇賢書院重創上梁文 乙酉
옥천 창주서원 상량문 沃川滄洲書院上梁文
무안 객사 동상방 상량문 무자년 務安客舍東上房上梁文 戊子
강릉 송담서원 상량문 江陵松潭書院上梁文

시남집 제22권

제문祭文
효종대왕 빈전에 평안 감사가 진향하는 제문 기해년 孝宗大王殯殿 平安監司進香祭文 己亥
우종 기우제문 雩宗祈雨祭文
남해당 기우제문 南海堂祈雨祭文
매형 윤 박사에 대한 제문 갑술년 祭妹兄尹博士文 甲戌
최사심 익 을 제사하는 애사 병서?을해년 祭崔士深 瀷 哀辭 幷序?乙亥
재종매형 최중망에 대한 제문 신사년 祭再從妹兄崔仲望文 辛巳
막내동생 계방에 대한 제문 병술년 祭小弟季方文 丙戌
사부 이일화에 대한 제문 무자년 祭李師傅日華文 戊子
죽은 조카 위에 대한 제문 祭亡姪?文
죽은 조카 위에 대한 제문 祭亡姪?文
동래 충렬서원 봉안 제문 임진년 東萊忠烈書院奉安祭文 壬辰
포저 조 상국에 대한 제문 祭浦渚趙相國文
신독재 김 선생에 대한 제문 祭愼獨齋金先生文
외삼촌 참의 남두첨에 대한 제문 祭舅氏南參議 斗瞻 文
내종 남백도에 대한 제문 祭內從南伯圖文
신군필에 대한 제문 祭申君弼文
여산 죽림서원에 사계 선생을 병향하는 제문 무자년 礪山竹林書院沙溪先生竝享祭文 戊子
연산 돈암서원 신독재 선생 종향 제문 連山遯巖書院 愼獨齋先生從享祭文
김제 향현사 제문 金堤鄕賢祠祭文
광주 명고서원 제문 廣州明皐書院祭文
미원서원 제문 迷源書院祭文
통제사 원숙 사제문 統制使元?賜祭文

축문祝文
빈전에 시호를 고하고 종묘에 고하는 축사 기해년 殯殿告諡號告廟祝辭 己亥
종묘에 대행 시호를 고하는 축사 宗廟告大行諡號祝辭
빈전에 묘호를 올리는 축사 殯殿上廟號祝辭
여산 죽림서원 사계 김 선생의 증시를 신주에 다시 쓰는 축문 礪山竹林書院沙溪金先生贈諡改題祝文
익산 사계 선생 서원 춘추 석채축문 益山沙溪先生書院 春秋舍菜祝文
공주 창강서원 춘추 석채 축문 公州滄江書院 春秋舍菜祝文
광주 포저 선생 서원 춘추 석채 축문 廣州 浦渚先生書院 春秋舍菜祝文
미원서원 춘추 석채 축문 迷源書院 春秋舍菜 祝文

시남집 제23권

묘갈지명墓碣誌銘
형조 참판 권공 신도비명 刑曹參判權公神道碑銘
공조 참의 유공 묘갈명 工曹參議兪公墓碣銘
별제 권공 묘갈명 別提權公墓碣銘
찰방 권공 묘갈명 察訪權公墓碣銘
부사 이공 묘갈명 府使李公墓碣銘
이생 묘갈명 李生墓碣銘
이 수재 묘갈명 李秀才墓碣銘
기안군 유공 묘갈명 杞安君兪公墓碣銘
우후 이공 묘갈명 虞候李公墓碣銘
대사간 윤공 묘표음기 大司諫尹公墓表陰記
선고 묘지문 先考墓誌文
예조 참의 유공 묘지명 禮曹參議兪公墓誌銘
Author
유계,이상수,임현정,황교은,오승준,이재숙
1607(선조40)~1664(현종5). 조선 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1630년(인조8) 진사과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시강원 설서로서 척화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성립되자 임천(林川)에 유배되었다. 1639년에 풀려났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금산(錦山)의 마하산(麻霞山)에 산천재(山泉齋)를 짓고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1646년 무안 현감이 되었다. 1649년 인조 사후에 인조의 묘호를 정하는 일에 반대하여 선왕을 욕되게 했다는 죄로 효종의 노여움을 사 1650년(효종1) 온성(穩城)에 유배되었다가 영월(寧越)로 이배되었다. 1652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다시 등용되어 대사간·대사성·부제학·대사헌·이조 참판·도승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시남집(市南集)》, 《가례원류(家禮源流)》, 《여사제강(麗史提綱)》이 전한다.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윤선거(尹宣擧)와 더불어 충청 오현(忠淸五賢)으로 일컬어졌다.
1607(선조40)~1664(현종5). 조선 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1630년(인조8) 진사과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시강원 설서로서 척화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성립되자 임천(林川)에 유배되었다. 1639년에 풀려났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금산(錦山)의 마하산(麻霞山)에 산천재(山泉齋)를 짓고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1646년 무안 현감이 되었다. 1649년 인조 사후에 인조의 묘호를 정하는 일에 반대하여 선왕을 욕되게 했다는 죄로 효종의 노여움을 사 1650년(효종1) 온성(穩城)에 유배되었다가 영월(寧越)로 이배되었다. 1652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다시 등용되어 대사간·대사성·부제학·대사헌·이조 참판·도승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시남집(市南集)》, 《가례원류(家禮源流)》, 《여사제강(麗史提綱)》이 전한다.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윤선거(尹宣擧)와 더불어 충청 오현(忠淸五賢)으로 일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