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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남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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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3/12/29
Pages/Weight/Size 152*225*35mm
ISBN 9791187638940
Categories 소설/시/희곡 > 고전문학
Description
유계(?棨, 1607-1664)의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유계는 송시열(宋時烈)ㆍ송준길(宋浚吉)ㆍ윤선거(尹宣擧)ㆍ이유태(李惟泰)와 함께 충청(忠淸) 산림(山林) 오현(五賢)으로 일컬어진다. 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영향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변화가 발생했던 시기이며, 사회경제 방면의 여러 정책과 예론에 대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충돌했던 때이다. 유계는 이 시기에 현실지향적인 측면에서 사회 모순을 개선하며 학문적으로 오랜 기간 자신이 축적한 경세론과 사회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방향을 모색하였다. 또한 역사와 경전 및 예설(禮說)에 조예가 있어 우리나라의 역사와 선현의 예설 등을 참고하여 《여사제강(麗史提綱)》ㆍ《가례원류(家禮原流)》를 편찬하였다. 주자(朱子)의 경전 및 《가례(家禮)》를 바탕으로 평생 경학과 예학에 몰두하고 정리하는 일에 힘쓰고 많은 저작을 남겼다. 아울러 유계의 《시남집》에는 예학과 경세학, 사학 및 문학에 걸쳐 괄목할 만한 글이 남아 있는데 그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남집》에는 그가 추구한 사회개혁 정책과 관련한 상소문과 예론, 경세론 등 유계의 학문과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적지 않은 글이 실려 있다.

《시남집》은 원집(原集) 24권, 부록(附錄) 3권 합 11책과 별집(別集) 9권, 부록(附錄) 합 4책으로 총 15책이다. 서문은 송시열이 썼고 윤증(尹拯)이 발문을 썼으며, 별집 말미에는 유노환(兪魯煥)의 별집 발문이 실려 있다.

17세기 중후반 조선은 양란(兩亂) 이전부터 내려오던 폐단과 양란의 영향으로 나라의 재정과 백성의 삶이 더욱 피폐한 상태였다. 유계가 활동하던 시기는 당대 시대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이 요구되던 때였고,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유계의 문집에는 경세사상과 민생에 대한 사회 정책 등의 고민이 여실이 담겨 있다.
Contents
일러두기

시남집 제9권

소疏
문학을 사직하는 상소 무술년 辭文學疏 戊戌
겸필선을 사직하는 상소 辭兼弼善疏
병조 참지를 사직하는 상소 기해년 辭兵曹參知疏 己亥
병조 참지를 사직하는 상소 두 번째 상소 辭兵曹參知疏 再疏
비변사 유사당상을 사직하는 상소 辭備邊司有司堂上疏
대사간을 사직하는 상소 辭大司諫疏
경연에 입시하라는 명을 사양하는 상소 辭經筵入侍之命疏
군정을 변통하는 일을 논하는 상소 論變通軍政疏
대사성을 사직하는 상소 辭大司成疏
부제학을 사직하는 상소 辭副提學疏
부제학과 비변사 부제조와 승문원 부제조를 사직하면서 경연에 특별히 입시하라는 명의 환수를 청하는 상소 경자년 辭副提學備邊司副提調承文院副提調 請還收經筵別入侍之命疏 庚子
비변사 부제조와 구관청 당상을 사직하는 상소 辭備邊司副提調句管廳堂上疏
사직하면서 진구청에서 아이들에게 군병 수포를 발매하는 일을 논한 상소 신축년 辭職 仍論賑救廳發賣兒弱軍兵收布事疏 辛丑
조경을 논하고 이어 사직하는 상소 論趙絅 仍辭職疏
거두어들이지 못한 적곡을 면제하여 민심을 위로할 것을 청하는 상소 請免捧未收?穀以慰民心疏
이조 참의를 사직하는 상소 임인년 辭吏曹參議疏 壬寅
사직하면서 이어 박세견에게 형벌을 가해 추고하라는 명의 환수를 청하는 상소 辭職 仍請還收朴世堅刑推之命疏
예문관 제학을 사직하는 상소 辭藝文館提學疏
대사헌을 사직하는 상소 辭大司憲疏
겸 대사성을 사직하는 상소 辭兼大司成疏
조복양과 함께 연명하여 재해를 그치고 굶주린 백성을 진휼할 방책을 아뢴 다음 납부하지 못한 세금을 탕감해 줄 것을 청하는 상소 與趙復陽聯名陳?災賑饑之方 請蕩滌逋負疏
이조 참판과 겸대한 여러 직임을 사직하고 이어 소회를 아뢴 상소 계묘년 辭吏曹參判兼帶諸職 仍陳所懷疏 癸卯
두 현인을 종사할 것을 청하는 상소 請兩賢從祀疏
남중유 등을 논하는 상소 論南重維等疏
여러 승지와 연명하여 체직을 청하는 상소 與諸承旨聯名請遞疏

시남집 제10권

차箚
대신과 예관과 근시가 대렴에 참석하게 할 것을 청하는 옥당의 차자 기축년 玉堂請令大臣禮官近侍入參大斂箚 己丑
사간원에 있을 때 묘호에 대해 논하려 했던 차자 諫院擬論廟號箚
속히 양사를 따르기를 청하는 옥당의 차자 玉堂請快從兩司箚
그동안 내린 성상의 하교가 온당하지 못함을 논한 옥당의 차자 玉堂論前後上敎之未安箚
권도를 따를 것을 청하는 차자 기해년 請從權箚 己亥
권도를 따르시라고 자전께 권하기를 청하면서 소회를 아뢰는 차자 請奉勸慈殿從權 因陳所懷箚
능행을 멈추기를 청하고 이어 재해를 그치게 할 방도를 아뢴 차자 請停陵幸 因陳?災之道箚
두 현신을 종사할 것을 청하는 옥당의 차자 玉堂請兩賢從祀箚
박세성을 나국하라는 명의 환수를 청하는 옥당의 차자 경자년 玉堂請還收朴世城拿鞫之命箚 庚子
윤선도와 권시가 올린 소장에 대해 논하는 옥당의 차자 玉堂論尹善道權?疏箚
유후성을 완전히 석방하라는 명을 환수하고 속히 고묘하자는 요청에 부응할 것을 청하며 이어서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도를 아뢴 옥당의 차자 玉堂請還收柳後聖全釋之命 ?副告廟之請 仍陳?災之道箚

시남집 제11권

차箚
약방에서 문안하지 말라는 전교를 환수하기를 청하는 옥당의 차자 玉堂請還收藥房勿爲問安之敎箚
약방에서 문안하지 말라는 전교를 환수하기를 청하는 옥당의 차자 두 번째 차자 玉堂請還收藥房勿爲問安之敎箚 再箚
옥당에서 시무를 논한 차자 신축년 玉堂論時務箚 辛丑
재해를 없앨 방법을 논한 옥당의 차자 玉堂論?災箚
옥당에서 올린 차자 玉堂箚
내연을 중지하고 재해를 없앨 방도를 강구하기를 청하는 옥당의 차자 玉堂請停內宴講究?災之道箚
서필원을 파직하라는 명을 환수하기를 청하는 옥당의 차자 玉堂請還收徐必遠罷職之命箚
사헌부에서 올린 차자 계묘년 憲府箚 癸卯

계啓
이시매의 일을 논한 계 기해년 論李時?事啓 己亥
정언을 사직하는 계 기축년 辭正言啓 己丑

시남집 제12권

서書
김신독재에게 올리는 편지 경인년 上金愼獨齋書 庚寅
김신독재에게 올리는 편지 신묘년 上金愼獨齋書 辛卯
김신독재에게 올리는 편지 을미년 上金愼獨齋書 乙未
안우산 방준 에게 주는 편지 與安牛山 邦俊 書
안우산에게 주는 편지 與安牛山書
송영보에게 답하는 편지 기축년 答宋英甫書 己丑
송영보에게 답하는 편지 정유년 答宋英甫書 丁酉
송영보에게 주는 별지 무술년 與宋英甫別紙 戊戌
송명보 준길 에게 주는 편지 기해년 與宋明甫 浚吉 書 己亥
송명보에게 주는 편지 與宋明甫書
송명보에게 주는 편지 與宋明甫書
송명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宋明甫書
송명보에게 주는 편지 신축년 與宋明甫書 辛丑
이신지 유부 와 태지에게 주는 편지 기축년
與李信之 惟孚 泰之書 己丑
이신지와 태지에게 주는 편지 기축년 與李信之泰之書 己丑
이신지와 태지에게 주는 편지 갑오년 與李信之泰之書 甲午
이태지에게 주는 편지 기해년 與李泰之書 己亥
이태지에게 주는 편지 與李泰之書
이태지에게 주는 편지 경자년 與李泰之書 庚子
송영보ㆍ송명보ㆍ이태지에게 주는 편지 갑진년 2월 20일에 쓴 유서
與宋英甫宋明甫李泰之書 甲辰仲春念日遺書
관례와 혼례에 관해 질문한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무자년 答尹吉甫問冠婚禮書 戊子
윤효직ㆍ여망ㆍ길보에게 주는 편지 기축년 與尹孝直汝望吉甫書 己丑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경인년 與尹汝望吉甫書 庚寅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는 답하는 편지 答尹汝望吉甫書
윤길보가 길제를 논한 것에 답하는 편지 경인년 答尹吉甫論吉祭書 庚寅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신묘년 與尹汝望吉甫書 辛卯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汝望吉甫書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書

시남집 제13권

서書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신묘년 答尹吉甫書 辛卯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임진년 答尹吉甫書 壬辰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書
윤길보가 논한 후천설에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論後天說書
윤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吉甫書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書
윤길보가 논한 후천설에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論後天說書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계사년 答尹吉甫書 癸巳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을미년 答尹吉甫書 乙未
윤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汝望吉甫書
윤길보가 논한 귀종에 대해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論歸宗書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병신년 答尹吉甫書 丙申
윤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汝望吉甫書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書
윤길보가 논한 서자를 후사로 삼는 것에 대해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論庶子爲後書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정유년 答尹吉甫書 丁酉
윤길보가 질문한 나이와 관작에 대해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問齒爵書
윤여망에게 주는 편지 무술년 與尹汝望書 戊戌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백분과 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伯奮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기해년 與尹汝望吉甫書 己亥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백분과 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伯奮汝望吉甫書
윤백분과 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伯奮汝望吉甫書
윤여망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汝望書
윤여망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경자년 與尹汝望吉甫書 庚子
윤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신축년 答尹汝望吉甫書 辛丑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與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汝望吉甫書
윤여망과 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임인년 答尹汝望吉甫書 壬寅
윤길보에게 답하는 편지 계묘년 答尹吉甫書 癸卯
조석윤 낙정에게 주는 편지 임진년 與趙 錫胤 樂靜書 壬辰
윤인경과 서경 추 에게 답하는 편지 병신년 答尹仁卿恕卿 推 書 丙申
윤인경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仁卿書
윤인경에게 답하는 편지 무술년 答尹仁卿書 戊戌
윤인경에게 답하는 편지 答尹仁卿書
윤인경에게 답하는 편지 임인년 答尹仁卿書 壬寅
윤여망과 길보에게 주는 편지 갑진년 2월에 쓴 유서 與尹汝望吉甫書 甲辰仲春日遺書

시남집 제14권

잡저雜著
족제비의 화 신묘년 貂禍 辛卯
인삼의 독 參毒
북쪽 지역의 중 北僧
변방의 창녀 邊娼
밀수 상인 潛商
거세한 병사 ?卒

책문제策問題
치도 治道
화란 禍亂
폐단을 바로잡는 계책 救弊之策
도의를 먼저 하고 공리를 뒤로 하다 先道義後功利
준수와 경장 遵守更張
백성과 국민 중에 무엇이 나은가 民國孰優歟
교린의 도 交隣之道
국보 國寶
나라에 백관이 있는데 하나의 관직이라도 폐해지면 나라가 나라노릇을 하지 못한다 國有百官 一官廢則國不國矣

통문通文
석담서원에 우계 선생을 함께 배향하는 통문 石潭書院牛溪先生竝享通文
황산서원 중창을 위한 통문 黃山書院重?通文

시남집 제15권

잡저雜著
독역쇄설 5조 讀易?說 五條
독시쇄설 110조 讀詩?說 一百十條
Author
유계,오승준,황교은,이재숙,이상수
1607(선조40)~1664(현종5). 조선 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1630년(인조8) 진사과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시강원 설서로서 척화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성립되자 임천(林川)에 유배되었다. 1639년에 풀려났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금산(錦山)의 마하산(麻霞山)에 산천재(山泉齋)를 짓고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1646년 무안 현감이 되었다. 1649년 인조 사후에 인조의 묘호를 정하는 일에 반대하여 선왕을 욕되게 했다는 죄로 효종의 노여움을 사 1650년(효종1) 온성(穩城)에 유배되었다가 영월(寧越)로 이배되었다. 1652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다시 등용되어 대사간·대사성·부제학·대사헌·이조 참판·도승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시남집(市南集)》, 《가례원류(家禮源流)》, 《여사제강(麗史提綱)》이 전한다.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윤선거(尹宣擧)와 더불어 충청 오현(忠淸五賢)으로 일컬어졌다.
1607(선조40)~1664(현종5). 조선 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이다. 1630년(인조8) 진사과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시강원 설서로서 척화를 주장하다가 화의가 성립되자 임천(林川)에 유배되었다. 1639년에 풀려났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금산(錦山)의 마하산(麻霞山)에 산천재(山泉齋)를 짓고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1646년 무안 현감이 되었다. 1649년 인조 사후에 인조의 묘호를 정하는 일에 반대하여 선왕을 욕되게 했다는 죄로 효종의 노여움을 사 1650년(효종1) 온성(穩城)에 유배되었다가 영월(寧越)로 이배되었다. 1652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다시 등용되어 대사간·대사성·부제학·대사헌·이조 참판·도승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는 《시남집(市南集)》, 《가례원류(家禮源流)》, 《여사제강(麗史提綱)》이 전한다.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윤선거(尹宣擧)와 더불어 충청 오현(忠淸五賢)으로 일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