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시의 정수를 맛보는 문학동네의 복간 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의 9차분 열 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81번부터 90번까지 유안진, 이시영, 강기원, 황학주, 김이듬, 엄원태, 박시하, 전동균, 김은주, 정해종 시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길게는 5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복간되는 이 시집들은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서가와 시사(詩史)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입니다.
특히 이번 9차분에서는 귀하디귀한 첫 시집을 대거 복간합니다. “이 기획이 멀고 높고 큰 뜻의 한국문학사 자체가 되기를 소망”(유안진, ‘시인의 말’)합니다. 올해부터 문학동네포에지는 만듦새에 변화를 주어 더 가볍고 더 투명한 스타드림 표지 종이로 커버를 한 겹 더 입혔습니다. 시리즈의 통일된 디자인을 지키면서도 정성을 겹으로 두른 방식을 고심한 결과물입니다. 9차분에서는 1970년 조광출판사에서 간행된 유안진 시인의 첫 시집 『달하』를 81번으로 내세웁니다.
53년을 거슬러 마주한 이 첫 시집은 시인을 채소밭 인분 냄새조차 황홀했던 왕십리 전동차, 한양대 박목월 시인 연구실과 화신백화점 뒷골목 이문설렁탕집으로 데려갑니다. 나를 증명해야만 했던 혼자 묻고 혼자 대답 찾는, 질문 못하는 아이가 시인 아닌 아무것도 안 될 거다, 맹세했던 시간을 지나 ‘달하’라는 이름으로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기까지의 인연을 읽다보면 “정말 좋은 시 한번 써보고 싶다”라는 시인의 말이 주는 울림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모든 한국근대사를 통과해온 그이기에 “인간이 어떻게 인간인가”(유안진, 「신비를 추구하는 자가 되어」, 『종로에는 시가 난다』, 난다, 2022) 물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특히 첫 시집을 복간하며 사투리를 한 글자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인 고비를 거치면서 우리말의 소리음을 아끼고 좋아하던 시인이었기에 이 시집은 입으로 말로 읽어주셔도 좋겠습니다. 문학동네포에지는 여성 시인이 시리즈의 선두에 나선 만큼 숨어 있고 숨겨져 있던 여성 시인들의 목소리, 시대를 앞서 묵묵히 제 시의 발성으로 온몸을 써왔던 여성 시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고 손을 내밀 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