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 이언적은 1514년(중종9) 문과 별시에 급제한 이후 파직과 출사를 거듭하다가 유배지에서 죽었다. 이언적의 삶은 연산군부터 명종조에 걸쳐 일어난 사대사화(四大士禍)에 모두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8세 때 무오사화가 일어났고, 14세 때 갑자사화가 있었으며, 벼슬에 있던 29세 때 기묘사화를 겪었지만 할아버지 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고, 55세 때의 을사사화와 57세 때의 정미사화에서는 직접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이러한 삶의 경험이 이언적의 사상과 학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이언적의 철학은 그 뿌리가 주자학이다.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에게로 계승되는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후대 학자들 또한 이언적을 서경덕(徐敬德), 이황(李滉), 이이(李珥), 임성주(任聖周), 기정진(奇正鎭)과 함께 조선조 성리학의 6대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는다. 한국 성리학을 대표하는 인물이 이황과 이이이며 이들에게서 한국 성리학의 중요한 이론 틀이 만들어졌지만 그 논의의 지평을 연 선구자는 서경덕과 이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경덕이 기(氣)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면서 이이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면, 이언적은 이(理)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면서 이황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황은 이언적의 행장을 쓰면서 이언적의 학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선생이 살아 계실 때 스스로 깊이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생이 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어리석어서 일찍이 벼슬에 나아가 선생을 우러러보고서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여 능히 이런 문제를 가지고 깊이 물어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다. 10여 년 전부터 병이 들어 재야에 묻혀 있으면서 하잘것없는 것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의지할 데를 찾아서 물을 곳이 없음을 돌아본 뒤에야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으로 선생의 사람됨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뒷날 정약용(丁若鏞) 또한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학문을 평가하면서 “회재와 퇴계의 학문을 날[經]로 하고 정치 경제를 씨[緯]로 하였다.”라고 평한 일이 있다. 이로 보아 이언적의 학문이 이황을 거쳐 이익에게까지 영향을 주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이 책은 최초로 이언적의 문집을 완역했다는 점에서 일반 독자나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장狀 차箚
정세를 아뢰고 모친을 봉양하게 해 주기를 청하는 글 신축년 8월 陳情乞養狀 辛丑八月 / 125
재차 정세를 진달하고 모친을 봉양하게 해 주기를 청하는 글 임인년 4월 再陳乞養狀 壬寅四月 / 128
을사년 1월 18일에 올린 사장 乙巳正月十八日辭狀 / 131
1월 24일에 올린 사장 正月二十四日辭狀 / 134
윤1월 17일에 올린 사장 閏正月十七日辭狀 / 137
윤1월 23일에 올린 차자 閏正月二十三日箚子 / 139
3월 8일에 올린 사장 三月初八日辭狀 / 141
회재집 제10권
장狀 차箚
병오년 봄에 올린 차자 丙午春箚子 / 145
3월에 정사하고 나서 올린 차자 三月呈辭上箚子 / 158
4월에 올린 사직장 四月辭職狀 / 160
5월 11일에 올린 두 번째 사장 五月十一日再度辭狀 / 163
6월 19일에 올린 세 번째 사장 六月十九日三度辭狀 / 165
발을 드리우는 것이 옳지 않음을 밝힌 차자 不宜垂簾箚子 / 167
회재집 제11권
습유拾遺
서序
《대학장구보유》 서 大學章句補遺序 / 173
《중용구경연의》 서 中庸九經衍義序 / 177
《구인록》 서 求仁錄序 / 185
《봉선잡의》 서 奉先雜儀序 / 187
전傳
사벌국전 沙伐國傳 / 189
제문祭文
손 사재에게 올리는 제문 祭孫四宰文 / 193
김모재 안국 에게 올리는 제문 祭金慕齋 安國 文 / 198
부인 손씨의 기일에 올리는 축문 孫夫人諱日祝文 / 202
가묘에 고하는 글 告家廟文 / 204
회재집 제13권
습유拾遺
장狀
신축년 6월 16일에 올린 정사 辛丑季夏十六日呈辭 / 249
임인년 9월에 올린 정사 壬寅九月呈辭 / 251
갑진년 7월에 올린 정사 甲辰秋七月呈辭 / 253
갑진년 9월에 올린 정사 甲辰秋九月呈辭 / 255
갑진년 11월에 올린 정사 甲辰十一月呈辭 / 258
갑진년 11월에 올린 대죄장 甲辰十一月待罪狀 / 260
을사년 윤1월에 올린 대죄장 乙巳閏正月待罪狀 / 262
을사년 12월에 올린 정사 乙巳十二月呈辭 / 264
차箚
시강원에서 올린 차자 侍講院箚子 / 266
양사에서 올린 차자 兩司箚子 / 270
사헌부에서 올린 차자 司憲府箚子 / 274
을사년 가을에 올린 차자 乙巳秋箚子 / 279
을사년 가을에 올린 차자 乙巳秋箚子 / 285
계啓
정부에서 올린 서계 10조 政府書啓十條 / 288
을사년 가을에 올린 의계 乙巳秋議啓 / 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