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얼굴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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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46062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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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6/11/25
Pages/Weight/Size 210*220*11mm
ISBN 9788946062474
Categories 예술
Description
30여 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노래하는
새카만 탄광 마을
눈처럼 새하얀 사람들의 이야기


1987년 동명의 음악 앨범과 함께 발행한 그림책 아빠 얼굴 예쁘네요가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 극단학전의 영상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와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발행됐다.

이 책의 저자는 명곡 아침이슬로도 유명한 김민기이다. 젊은 시절의 저자가 탄광촌에서 직접 보고 겪은 경험과 실제 탄광촌 아이들의 일기와 글을 바탕으로 쓴 1980년대 탄광촌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동봉된 음악 CD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면, 힘들어 좌절할 때도 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돕고 살았던 그 시절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사람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볼 계기가 되길 바란다.
Author
김민기,정용기
1970년대의 어두웠던 정치상황을 관통한 김민기의 노래들은 이후 그를 투사의 이미지로 여과시켰고 독재정권의 대척점에 서게 만들었다. 군부독재는 그의 음악들을 모두 금지시킴으로써 이를 더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었으며 김민기란 이름은 민주주의에 힘을 실어 주는 서포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대한 왕성한 창작욕을 보였던 그는 미대에 진학해 고교 시절 그룹 사운드에 몸담았던 친구와 듀엣 도비두를 결성하게 된다. 음악 살롱을 오가며 포크 음악을 부르던 그는 양희은을 만나 곡을 주게 되었고 그녀는 1970년 ‘아침이슬’로 순식간에 대학생들의 귀를 사로잡으며 김민기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작곡가로 높은 역량을 과시한 김민기도 음악 평론가 최경식의 주선으로 솔로 음반을 제작한다. 1971년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가 수록된 이 전대미문의 포크 음반은 이후 모든 반정부 집회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되었으며 그의 음악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회성을 획득하며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을 제외하곤 이전이나 이후에 발표된 어떠한 음반도 사회적으로 이러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도 김민기의 이 앨범만큼 의식화된 파급효과를 뛰어 넘지 못했다. 김민기가 음악으로 사회개조에 착수한 것은 시인 김지하 등이 회원으로 있던 폰트라(Pontra)라는 문화 연합회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그 곳에서 사상적인 충격을 받은 그는 현실 참여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 노래인도, 야학 활동, 도시 선교 사업 활동, 노동 진영의 문화 운동가로 활동하며 틀을 다졌다.

이어 김민기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에서 음악을 맡고, 일본의 기생관광에 초점을 맞추어 한일관계를 풍자한 소리굿 「아구」에서 음악과 각본을 담당했으며 이애주의 무용극 「땅굿」 등에 참가하면서 국악을 비롯한 우리의 것에 대한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자신이 만든 노래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해야했던 김민기는 제대 후 공장을 다니며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 수록된 양희은의 솔로 음반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곡들을 발표하면서 여전한 창작력을 과시한다. 하지만 합법적인 음악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노조 탄압사례의 하나인 동일방직 사건을 소재로 하여 「공장의 불빛」이라는 노래굿을 테이프에 담아내었고 10.26 이후에는 극단 광대의 창작극 「돼지풀이」를 기획하며 정부의 압력을 피해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했다.

한 동안은 농사를 지으며 중간 상인의 부패 고리를 척결하기 위해 애쓰며 농사로 괜찮은 수익을 올리기도 한 김민기는 1981년, 마당극 「1876년에서 198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에서 소규모로 공연을 가졌으며 이 작품을 개작해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연극제에 출품하기도 한다. 이후 문민정부와 함께 자신의 음악이 재평가되는 것을 보게 된 김민기는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그의 모든 음악적 역량이 녹아든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의형제」 등의 작품은 국내에 록오페라 형식의 뮤지컬을 뿌리 내리는데 한 몫 했으며 작품마다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직까지 대단한 호응 속에 상영되고 있는 이 작품들 중 「지하철 1호선」은 2000년 원작자의 고향인 독일의 베를린에서도 공연되어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1993년 그의 음악적 인생을 결산하는 음반이 4장의 CD로 묶여 나왔고 몇년 전 후배들은 그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트리뷰트 공연을 펼치며 파란만장했던 한 삶에 경의를 표했지만 그의 데뷔 음반이나 양희은의 이름으로 전파된 많은 곡들은 아직까지도 별로 변한 것 없는 사회에 유효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1970년대의 어두웠던 정치상황을 관통한 김민기의 노래들은 이후 그를 투사의 이미지로 여과시켰고 독재정권의 대척점에 서게 만들었다. 군부독재는 그의 음악들을 모두 금지시킴으로써 이를 더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었으며 김민기란 이름은 민주주의에 힘을 실어 주는 서포터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대한 왕성한 창작욕을 보였던 그는 미대에 진학해 고교 시절 그룹 사운드에 몸담았던 친구와 듀엣 도비두를 결성하게 된다. 음악 살롱을 오가며 포크 음악을 부르던 그는 양희은을 만나 곡을 주게 되었고 그녀는 1970년 ‘아침이슬’로 순식간에 대학생들의 귀를 사로잡으며 김민기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작곡가로 높은 역량을 과시한 김민기도 음악 평론가 최경식의 주선으로 솔로 음반을 제작한다. 1971년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가 수록된 이 전대미문의 포크 음반은 이후 모든 반정부 집회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되었으며 그의 음악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회성을 획득하며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을 제외하곤 이전이나 이후에 발표된 어떠한 음반도 사회적으로 이러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도 김민기의 이 앨범만큼 의식화된 파급효과를 뛰어 넘지 못했다. 김민기가 음악으로 사회개조에 착수한 것은 시인 김지하 등이 회원으로 있던 폰트라(Pontra)라는 문화 연합회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그 곳에서 사상적인 충격을 받은 그는 현실 참여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 노래인도, 야학 활동, 도시 선교 사업 활동, 노동 진영의 문화 운동가로 활동하며 틀을 다졌다.

이어 김민기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에서 음악을 맡고, 일본의 기생관광에 초점을 맞추어 한일관계를 풍자한 소리굿 「아구」에서 음악과 각본을 담당했으며 이애주의 무용극 「땅굿」 등에 참가하면서 국악을 비롯한 우리의 것에 대한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자신이 만든 노래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해야했던 김민기는 제대 후 공장을 다니며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 수록된 양희은의 솔로 음반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곡들을 발표하면서 여전한 창작력을 과시한다. 하지만 합법적인 음악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노조 탄압사례의 하나인 동일방직 사건을 소재로 하여 「공장의 불빛」이라는 노래굿을 테이프에 담아내었고 10.26 이후에는 극단 광대의 창작극 「돼지풀이」를 기획하며 정부의 압력을 피해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했다.

한 동안은 농사를 지으며 중간 상인의 부패 고리를 척결하기 위해 애쓰며 농사로 괜찮은 수익을 올리기도 한 김민기는 1981년, 마당극 「1876년에서 1984년까지」를 만들어 전주에서 소규모로 공연을 가졌으며 이 작품을 개작해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연극제에 출품하기도 한다. 이후 문민정부와 함께 자신의 음악이 재평가되는 것을 보게 된 김민기는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그의 모든 음악적 역량이 녹아든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의형제」 등의 작품은 국내에 록오페라 형식의 뮤지컬을 뿌리 내리는데 한 몫 했으며 작품마다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직까지 대단한 호응 속에 상영되고 있는 이 작품들 중 「지하철 1호선」은 2000년 원작자의 고향인 독일의 베를린에서도 공연되어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1993년 그의 음악적 인생을 결산하는 음반이 4장의 CD로 묶여 나왔고 몇년 전 후배들은 그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트리뷰트 공연을 펼치며 파란만장했던 한 삶에 경의를 표했지만 그의 데뷔 음반이나 양희은의 이름으로 전파된 많은 곡들은 아직까지도 별로 변한 것 없는 사회에 유효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