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친 교수

$15.98
SKU
9791128836817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Thu 05/23 - Wed 05/29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Mon 05/20 - Wed 05/22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9/08/01
Pages/Weight/Size 128*188*20mm
ISBN 9791128836817
Categories 예술
Description
산문작가로서, 그리고 극작가로서 러시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던 레오니트 안드레예프는 당시 러시아 문학계의 거목이었던 막심 고리키의 극찬을 받으면서 등단한다.『스토리친 교수』는 ‘범심론극’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엿보이는 희곡이다.
Contents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Author
레오니트 안드레예프,박선진
1871년 8월 21일, 율리우스력으로는 8월 9일에 러시아 오룔에서 태어났다. 지독히도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 안드레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비싼 수업료를 낼 형편이 못 되어 제적당하고 만다. 이후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법학부로 옮겨 가 공부를 계속했으며, 마침내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그 후 안드레예프는 신문과 잡지의 법률 담당 통신원으로 일하게 되었고, 이 시절에 자신의 첫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안드레예프의 재능을 알아본 막심 고리키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며, 이로써 안드레예프는 문학그룹인 지식파(派)에 가입할 수가 있었다. 이후 작품 ≪침묵≫(1901)으로 안드레예프의 등단이 이루어지게 된다. 1901년에 출판된 첫 단편집에 실렸던 단편소설 <옛날 옛적에>가 대중들의 큰 관심을 모은 것을 시작으로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1902년에 발표한 <심연>, <안개 속에서>와 같은 작품들은 대담한 성(性)의 묘사로 인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논쟁 속에서도 안드레예프는 이후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재능이 넘치는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며 부와 명성을 쌓아 나가게 된다.

안드레예프가 극작가로서 이루어 낸 가장 큰 업적이라고 볼 수 있는 범심론이 그의 희곡들 속에서 발전해 나간 것은 1890년대에서 1900년대 사이의 일이다. 그러나 안드레예프가 의식적으로 자신이 정립한 문학 이론으로서의 범심론을 완성해 가고 도입했던 것은 1910년대의 일로, 이 시기에 집필된 희곡들로는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스토리친 교수>, <생각>, <따귀 맞는 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심론 완숙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개의 왈츠>가 있다.

정치적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로운 문학 활동만을 꿈꾸었던 안드레예프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고국을 등지고 핀란드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1919년 9월 12일 핀란드의 한 시골 마을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리 길지는 않았던 자신의 삶을 타향에서 마감하게 된다. 1930년에 판금 작가로 분류된 이후 안드레예프의 작품은 소련에서 절판되었고, 스탈린 사후인 1956년에 들어서야 복권되고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의 유해는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장되어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1871년 8월 21일, 율리우스력으로는 8월 9일에 러시아 오룔에서 태어났다. 지독히도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 안드레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비싼 수업료를 낼 형편이 못 되어 제적당하고 만다. 이후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법학부로 옮겨 가 공부를 계속했으며, 마침내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그 후 안드레예프는 신문과 잡지의 법률 담당 통신원으로 일하게 되었고, 이 시절에 자신의 첫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안드레예프의 재능을 알아본 막심 고리키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며, 이로써 안드레예프는 문학그룹인 지식파(派)에 가입할 수가 있었다. 이후 작품 ≪침묵≫(1901)으로 안드레예프의 등단이 이루어지게 된다. 1901년에 출판된 첫 단편집에 실렸던 단편소설 <옛날 옛적에>가 대중들의 큰 관심을 모은 것을 시작으로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1902년에 발표한 <심연>, <안개 속에서>와 같은 작품들은 대담한 성(性)의 묘사로 인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논쟁 속에서도 안드레예프는 이후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재능이 넘치는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며 부와 명성을 쌓아 나가게 된다.

안드레예프가 극작가로서 이루어 낸 가장 큰 업적이라고 볼 수 있는 범심론이 그의 희곡들 속에서 발전해 나간 것은 1890년대에서 1900년대 사이의 일이다. 그러나 안드레예프가 의식적으로 자신이 정립한 문학 이론으로서의 범심론을 완성해 가고 도입했던 것은 1910년대의 일로, 이 시기에 집필된 희곡들로는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스토리친 교수>, <생각>, <따귀 맞는 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심론 완숙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개의 왈츠>가 있다.

정치적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로운 문학 활동만을 꿈꾸었던 안드레예프는 볼셰비키가 정권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고국을 등지고 핀란드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1919년 9월 12일 핀란드의 한 시골 마을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리 길지는 않았던 자신의 삶을 타향에서 마감하게 된다. 1930년에 판금 작가로 분류된 이후 안드레예프의 작품은 소련에서 절판되었고, 스탈린 사후인 1956년에 들어서야 복권되고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의 유해는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장되어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