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어느 날, 중국 연길에서 만난 한 탈북자 청년과 인연이 된 것을 시작으로, 문국한 씨는 생전 처음 북한의 처참한 실상을 알게 되었다. 그 즈음 북한에 연고가 있는 조선족 서 씨 여인을 만나 장마당에서 인육이 거래되고 사람들이 굶어죽는 북한의 현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이 비극을 모른 체 할 수 없다는 사명감에 시달리게 된다. 어느 날, 서 씨 여인의 꿈에 한 소년이 나타나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목을 졸랐다. 여인은 얼마 후 그 꽃제비 소년을 서시장 부근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이 책의 주인공 장길수 군과 인연이 되었다. 소년은 혼자가 아니었다. 외할머니를 시작으로 열다섯 명의 일가족 전체가 몇 차례에 걸쳐 탈북을 감행하다가, 일부는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던 결손가정이었다. 길수가족은 그때부터 문국한 씨를 큰아버지, 서 씨 여인을 큰어머니로 부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밟게 될 날만을 꿈에 그리며, 북한에 두고 온 나머지 식구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 그리고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얼룩진 길수가족의 기약 없는 은신처 생활이 이어졌다. 지난한 기다림 속에서 대한민국으로 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절망이 짙어지는가 하면, 길수가족을 응원하는 방송이 전파를 타고 ‘길수가족 구명 운동본부’가 만들어졌을 때는, 한없는 희망이 생겨나기도 했다. 큰아버지는 이 모든 시선들을 감내하면서 한국에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아무런 대가없이 길수가족 전체를 중국에서 먹여 살리며 보살피고 있었다.
열다섯 탈북 소년이 중국 은신처에서 적어 내려간
한국판 ‘안네의 일기’!
길수 가족은 매일 소원을 적은 종이학을 접었다. 그림 솜씨가 좋았던 길수 형제는 북한의 실상을 크레용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열다섯 살 길수 소년이 스스로 ‘문제 기록장’이라고 일컬은 이 일기장에는 생존 문제 못지않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던 질풍노도 시기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으려 노력하는 길수 군이 분에 못 이겨 일기를 써 내려갔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열다섯 살이었다.
대한민국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평화통일을 염원하던 때에, 중국의 은신처에서는 길수가족이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속에 대한민국으로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목숨처럼 자유를 갈망하는 한 탈북 소년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 밖이었다. 큰아버지 입에서는 좀처럼 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의견이 분분해져 서로 갈라져 싸우는가 하면, 큰어머니의 딸인 이 선생님은 은신처 식구들을 보살피며 심각한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다. 장마당 할머니와 은신처의 보호자, 그리고 길수가족 모두가 피를 말리는 나날들을 보냈다. 좁고 갑갑한 은신처 안에서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다가도 이내 못마땅해 하는 날들이 사정없이 흘러갔다. 의심을 살까봐 물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한국에서 큰어머니가 사다주시는 신발을 신어보는 게 소원이었던 길수는, 은신처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휘파람을 불었다가 일가족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기도 했다.
어느 날, 대련 은신처에 머물던 길수가 연길로 간 어머니의 전화 통화에서 위험을 직감했을 무렵, 어머니는 ‘큰아버지 곁을 떠나지 말라. 길수야, 우리 같이 살자!’던 통화를 끝으로, 한 탈북자의 밀고로 북송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자유의 땅 대한민국으로 가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평생 눈물이 날 일 앞에서, 길수 군은 자유가 목숨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는 절절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어머니를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며 이 일기는 끝을 맺는다.
머지않아, 큰아버지가 3년 여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구명운동을 펼친 끝에, 길수가족은 2001년 큰아버지의 인솔 끝에 버스와 열차를 타고 은신처를 벗어나 중국 북경의 유엔난민기구 진입에 성공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전 세계 외신으로부터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진입 사흘 후 중국을 벗어나 은신생활 22개월 만에 비로소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 땅에 도착했다.
Contents
추천사 1 ‘오래도록 길 가지 못하고’
추천사 2 ‘길수야 미안하다’
추천사 3 ‘북한 인권과 통일을 향한 나의 사명’
추천사 4 ‘우리는 이 일을 접을 수 없다’
2000년
1. 상갓집 개
2. 큰어머니
3. 장군의 근심
4. 바다구경
5. 롤러스케이트
6. 은주 누나
7. 84년 쥐띠
8. 종이학
9. 피신
10. 이 선생님과의 이별
11. 열일곱 살
2001년
12. 연길이 위험하다
13. 슬픈 목소리
14. 체포
15. 정치범 수용소
장길수 연보
Author
장길수
1984년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교사인 아버지와 여군출신인 어머니 사이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창 공부할 중학교 2학년인 1999년 1월,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남은 식구들을 구하러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국경 경비대에게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던 끝에 극적으로 탈출했다. 1999년 8월, 중국 연길에서 조선족 여인 서영숙 씨와 만난 것을 계기로 문국한 씨와도 인연이 되었다. 문국한 씨는 길수 가족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의식주를 제공하고 보호해주었다. 저자는 그때부터 북한 실상을 알리는 크레용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중국 은신처 경험을 일기로 남겼다. 그가 그린 그림 일부는 「서울 NGO 세계대회」에 출품되어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중국 은신처에서 숨어 지내던 시기인 2000년 5월에 출판된 『눈물로 그린 무지개』(길수가족 공저, 문학수첩 펴냄)가 있다. 같은 해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를 통해 그의 힘겨운 중국 은신생활의 근황이 알려지면서 세상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2001년 6월,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 주재 유엔난민기구UNHCR에 진입해 탈북자로서는 최초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남한에 올 수 있었다. 2008년에 대한민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그곳에 살고 있다. 전 세계에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오늘날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1984년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교사인 아버지와 여군출신인 어머니 사이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창 공부할 중학교 2학년인 1999년 1월,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쳐 남은 식구들을 구하러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국경 경비대에게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던 끝에 극적으로 탈출했다. 1999년 8월, 중국 연길에서 조선족 여인 서영숙 씨와 만난 것을 계기로 문국한 씨와도 인연이 되었다. 문국한 씨는 길수 가족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의식주를 제공하고 보호해주었다. 저자는 그때부터 북한 실상을 알리는 크레용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중국 은신처 경험을 일기로 남겼다. 그가 그린 그림 일부는 「서울 NGO 세계대회」에 출품되어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중국 은신처에서 숨어 지내던 시기인 2000년 5월에 출판된 『눈물로 그린 무지개』(길수가족 공저, 문학수첩 펴냄)가 있다. 같은 해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를 통해 그의 힘겨운 중국 은신생활의 근황이 알려지면서 세상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2001년 6월,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 주재 유엔난민기구UNHCR에 진입해 탈북자로서는 최초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남한에 올 수 있었다. 2008년에 대한민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그곳에 살고 있다. 전 세계에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오늘날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