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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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2/14
Pages/Weight/Size 127*188*20mm
ISBN 9791197301643
Categories 에세이
Description
“인간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헤르만 헤세, 종교와 삶에 대한 물음에 답하다

헤세는 그의 작품 《데미안》, 《싯다르타》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헤르만 헤세 작품 세계의 정수!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시대에는 방황하는 현대인들이 많다. 그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이겨 낼 힘이 없고, 불안이나 걱정으로 가득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 이런 이들에게는 믿음이 필요하다. 삶의 지표가 되어 주고, 마음을 단단하게 해 줄 믿음 말이다.

이번에 ‘도서출판 로만’에서 출간된 헤르만 헤세의 《나의 믿음》은 헤세가 종교에 관해, 믿음에 관해 고찰한 것을 모은 것이다. 그의 이러한 종교관은 종교 생활은 물론이고 정치적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믿음에 관한 견해, 종교 생활, 정치적 생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싯다르타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Contents
《나의 믿음》은 어떤 책인가? 7

제1장
영혼으로부터 27
일치에 관하여 44
우리 시대가 갈망하는 세계관 51
극동을 바라보다 62
·부처의 말
·힌두교
·중국의 가르침
·공자
·노자
·《역경》
·중국의 선
·머나먼 동쪽을 향한 시선

제2장
나의 믿음 111
단편 신학 118
자의식 142
·시〈자의식〉에 관한 편지에서 발췌

제3장
내가 말하는 믿음 159
·편지 및 고찰 모음, 1910~1961년
신비로운 것들 244
역자 후기 271
원문 출처 276
Author
헤르만 헤세,강민경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