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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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08/31
Pages/Weight/Size 152*223*20mm
ISBN 9791197004575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비평/비판
Description
한 세기 전, 청년 칼 슈미트는 자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다. “독일인들은 쉽고 편한 한마디 말로 어렵지 않게 소통하는 경쾌함이 부족하다.” 슈미트가 보기에 당시 독일인들의 언어생활은 바벨의 혼란을 방불케 했다. 때는 바야흐로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사람들은 더 이상 기존의 가치와 질서 들을 신뢰할 수 없었다. 절망과 허무의 감정만이 그들을 지탱했다. 삶의 의미가 제 빛을 잃으며 온갖 어지러운 말들이 난무했다. 난분분한 말들이 무성한 갈등을 꽃피우자, 허무주의는 더 깊이 사람들의 영혼에 뿌리내렸다.

이 혼돈의 땅에서 청년 슈미트는 문제의 뿌리를 찾아 근절하려는 작업에 착수한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바로 그 작업의 결과다. 슈미트는 ‘19세기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이 무책임하게 뿌려 댄 무질서의 씨앗이 무성하게 자라 오늘날 수많은 갈등과 혼란을 유발했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이 씨앗의 다른 이름은 ‘주관적 기연주의’다. 바로 자아 비대증과 기회주의의 절묘한 결합이라는 것이다. 주관적 기연주의의 응용 확장판인 ‘정치적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슈미트는 현 세계 기형성의 한 원인을 소상히 밝혀낸다. 이 책은 정치 풍자와 역사 비평의 모범적인 결합을 보여 주며,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Contents
서문
서론

Ⅰ. 외부 상황
Ⅱ. 낭만주의 정신의 구조
Ⅲ. 정치적 낭만주의

결론
옮긴이 후기
Author
칼 슈미트,조효원
독일의 법학자, 정치학자. 독일 플레텐베르크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1910년 지금은 프랑스의 알사스 주에 속하는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2년 첫 저서로 『법률과 판결』을 출간했으며, 1919년에는 뮌헨 상업전문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막스 베버의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1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 정교수로 취임했으며 이 해에 『독재』를 출간했다. 1927년 에른스트 윙거와 평생 지속된 우정이 시작되었으며, 1928년 베를린 상업대학 정교수로 취임했다. 1930년 여러 저서들과 평가서들을 통해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체제를 정당화하려고 노력했으며, 행정 관료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제국 행정부와 판결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더욱 증대되기도 했다. 1933년 독일국가사회당(나치당)에 가입했으며, 국가사회주의를 옹호할 목적으로 『국가, 운동, 민족』을 출간했다. 그러나 1936년 나치 돌격대(SS)의 공격을 받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1945년 미군에 체포되어 베를린 교외에 있는 포로 및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되었다. 1947년 불기소 처분을 받고 고향인 플레텐베르크에 정착했다. 1970년 마지막 저서인 『정치신학 Ⅱ』가 출간되었으며, 1985년 4월 고향에서 작고했다.
독일의 법학자, 정치학자. 독일 플레텐베르크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1910년 지금은 프랑스의 알사스 주에 속하는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2년 첫 저서로 『법률과 판결』을 출간했으며, 1919년에는 뮌헨 상업전문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막스 베버의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1년 그라이프스발트 대학 정교수로 취임했으며 이 해에 『독재』를 출간했다. 1927년 에른스트 윙거와 평생 지속된 우정이 시작되었으며, 1928년 베를린 상업대학 정교수로 취임했다. 1930년 여러 저서들과 평가서들을 통해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체제를 정당화하려고 노력했으며, 행정 관료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제국 행정부와 판결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더욱 증대되기도 했다. 1933년 독일국가사회당(나치당)에 가입했으며, 국가사회주의를 옹호할 목적으로 『국가, 운동, 민족』을 출간했다. 그러나 1936년 나치 돌격대(SS)의 공격을 받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1945년 미군에 체포되어 베를린 교외에 있는 포로 및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되었다. 1947년 불기소 처분을 받고 고향인 플레텐베르크에 정착했다. 1970년 마지막 저서인 『정치신학 Ⅱ』가 출간되었으며, 1985년 4월 고향에서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