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세월

독립운동가 김철남과 그 일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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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96054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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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1/03/22
Pages/Weight/Size 152*225*23mm
ISBN 9791196054977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독립운동가와 그 일가의 삶에 담긴 아시아 현대사의 굴곡

이 책은 김철남 독립운동가가 중국으로 건너간 1910년대 시기부터 이후 그의 아들 김정평으로 이어진 삶까지 연대순으로 보여준다. 김철남 독립운동가가 군사지식과 전투경험을 쌓아 조국의 광복을 앞당기겠다는 일념으로 군에 입대한 시절부터, 기꺼이 항일운동에 힘쓴 나날, 고난으로 가득한 피난 길, 이후 광복과 조국의 분단,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문화대혁명, 죽음 이후 유가족도 모르게 이장되어 그의 주검이 사라져버린 일화까지 한 편의 영화 같던 그와 일가의 일생을 한 권에 담았다. 김철남 독립운동가의 기구한 운명과 그 일가의 100여 년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아시아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살펴볼 수 있다.
Contents
이 책은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프롤로그

01. 가족
아버지 │ 우리 가족의 수호신 │ 할머니 │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02. 항일전쟁
“호외요, 호외!” │ 쑤저우의 여정 │ 피난 │ 작은 동생의 죽음 │ 정원에서의 항일운동 │ 피난의 대장정

03. 소년, 전쟁을 겪다
칭무관 │ 전쟁 속 우리집 │ 또 다른 세계 │ 깨어진 베이페이구의 꿈 │ 어디로 가시나이까 │ 장진에서의 고등학교 생활

04. 나의 대학시절
귀향 │ 대학 생활 │ 1949년 │ 난징과의 이별

05. 베이징
베이징 인민예술극원(가극원) │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 │ 오페라 콤플렉스, 《초원의 노래》 │ 니에얼과 시엔싱하이 기념음악회 │ 옛친구와의 재회

06. 레드카드, 1957년
반우파 투쟁 중의 혼례 │ 내가 ‘우파’? │ 자오다오커우 정거장 위의 신부 │ 폐막식 │ 구사일생

07. 만리장성 밑에서
“미래를 내다봐야 해” │ 나의 노동 개조 사부 │ 목계영 점장대 밑에서 오리를 기르다 │ 면회 │ 목가

08. 민족학원
‘진 선생님’ │ 아쯔의 행복 │ 우수 교사 대표

09. 양산거변
“잘하면 대단한 것이고, 잘못하면 큰일 나는 겁니다!” │ 양산에 가다 │ 급변하는 정세 │ “되겠어, 안 되겠어?” │ ‘결말’에 대한 이야기

10. 전대미문
서막 │ 천지개벽 │ 집중 개조 │ 비판 │ 노동 만세! │ 계급대오 정리 │ 혈육의 정

11. 오칠노선
‘1호 명령’ │ 첸강 간부학교 │ 여기서부터 시작 │ 요동치는 정세

12. 역사의 한 단락
십 리 창안길 배웅 │ 한 시대의 끝 │ 누명 시정 통보서

13. 새로운 페이지를 열며
쿠오바디스 │ 《창바이산의 봄》 │ 《교향악의 봄》

14. 아버지의 고향과 옛친구
첫 번째 이야기 │ 두 번째 이야기

피날레
오페라 《목조적전설》의 탄생 │ 집으로 돌아온 후 │ 잊지 못할 음악회

에필로그
Author
김정평,김혜영,서성애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망명 후 조선의 독립운동에 힘쓴 아버지 김철남과 중국 장시성 난창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늘 탄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싸우시던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네 명의 동생들을 돌보았다. 고등학생이던 1945년 광복 당시 애국지사 아버지의 지시로 연설대회에 참가해 우리의 독립을 알리고 조선과 중국이 힘을 합치자는 내용을 발표해 학우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1946년 국립중앙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 음악학과로 편입했고, 1950년 일을 시작하여 중앙가극원의 지휘자 겸 작곡가, 중국영화악단의 지휘자 겸 예술위원회 주임, 중앙민족대학 음악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1990년 ‘아리랑 필하모닉 악단’을 결성하고, 1992년 아버지를 대신해 한국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3년 다시 한 번 한국에 초청되어, KBS 교향악단과 함께 순국선열을 위해 직접 쓴 《제1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는 수많은 오페라, 무용극, 교향곡, 합창을 지휘한 1급 지휘자로, 다수의 영화 및 드라마 음악을 작곡, 녹음하기도 했다.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망명 후 조선의 독립운동에 힘쓴 아버지 김철남과 중국 장시성 난창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늘 탄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싸우시던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네 명의 동생들을 돌보았다. 고등학생이던 1945년 광복 당시 애국지사 아버지의 지시로 연설대회에 참가해 우리의 독립을 알리고 조선과 중국이 힘을 합치자는 내용을 발표해 학우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1946년 국립중앙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 음악학과로 편입했고, 1950년 일을 시작하여 중앙가극원의 지휘자 겸 작곡가, 중국영화악단의 지휘자 겸 예술위원회 주임, 중앙민족대학 음악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1990년 ‘아리랑 필하모닉 악단’을 결성하고, 1992년 아버지를 대신해 한국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3년 다시 한 번 한국에 초청되어, KBS 교향악단과 함께 순국선열을 위해 직접 쓴 《제1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는 수많은 오페라, 무용극, 교향곡, 합창을 지휘한 1급 지휘자로, 다수의 영화 및 드라마 음악을 작곡, 녹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