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은 1938년 대구 서문시장에 종업원 40명 규모의 [삼성상회]를 세운다. 삼성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80여 년 세월을 거치며 삼성은 세계적인 재벌그룹으로 도약했다. 무엇보다 정치권력과 맺은 동맹 덕분이었다. 정권과 동맹을 통해 삼성은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고 독재와 민주화,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거듭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변함없이 권력을 휘두른 집단은 삼성이 거의 유일하다.
87년 민주화와 함께 이건희 시대가 열리면서 삼성과 정권 동맹의 성격이 변화한다. 독재정권 시대에는 최고통치자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제공하면 만사형통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권력이 분산되면서 이건희는 국회의원, 정부 관료, 법조인, 언론인에게도 손을 뻗쳐야 했다. 삼성에게 이것은 오히려 또 다른 기회였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과의 관계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부문의 ‘삼성맨’들이 나서서 삼성을 보위했기 때문이다. 사회 전 부문에 뿌리내린 관계망에 힘입어 삼성은 독재 시대보다 더욱 강력한 ‘삼성왕국’을 건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 안에서 삼성‘독재’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삼성권력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된 과정을 삼성의 정치적·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살펴본다. 그동안 삼성의 역사는 경영 실적에 대한 화려한 수사로 그려져 온 경향이 짙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비판 이론은 삼성이 지닌 독점적 경제력에만 주목해 사회 현실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데 미흡했다. 이런 경향들은 삼성이 태초부터 정치적 기업으로 조직되고 다양한 정치적 실천에 따라 권력이 된 역동성을 간과한다. 삼성을 ‘정치적 기업’으로 보면 삼성권력이 국가적 문제가 된 까닭뿐만 아니라, 재벌 개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Contents
책머리에
1부 이병철 시대 _ 민주주의 ‘밖’에서의 동맹
정치적 자본가의 탄생
정경유착의 시작
삼성권력의 건설
혁명도 빗겨 간 삼성
쿠데타세력과 내통하다
밀수로 다져진 협력, 그리고 배신과 대응
군부독재정권과의 동맹
돈의 접착력은 엿보다 강하다
노조 파괴와 투기판
또 하나의 정부가 되다
2부 이건희 시대 _ 민주주의 ‘안’에서의 동맹
활짝 열린 재벌의 시대
자본을 해방시킨 민주화
지옥으로, 그러나 다시 천국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건설
흔들림 없는 비서실 권력
선거 업어치기
삼성왕국의 건설
삼성 근본주의가 도래하다
재벌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정부
정치독재에서 자본독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