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동부 낭시에서 태어나 프랑슈콩테 지방의 중심도시 브장송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헌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여러 언어와 고문서 공부에 관심을 가졌다. 1899년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역사와 지리 교사 자격을 취득했다. 졸업 후 『역사종합평론』(1900년 창간)의 편집인 앙리 베르와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인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많은 논문과 서평을 썼던 이 잡지에 대해 “새로운 역사를 위한 트로이의 목마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11년에 「펠리페 2세와 프랑슈콩테: 1567년 위기의 기원과 결과에 대한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연구」로 박사 학위논문을 발표해 최우수 평가를 받았고, 이듬해 디종 대학에 임용되어 종신직을 보장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4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뒤 1919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으로 옮겨, 1933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근대 문명사 교수로 선임될 때까지 가르쳤다.
페브르는 성실한 연구자로서 빼어난 학위논문을 비롯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1928),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라블레의 종교』(1942), 『오리게네스와 데 페리에 혹은 ‘심발룸 문디’의 수수께끼』(1942),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1944) 등 주요 저작을 펴냈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시대 전문가로서 역사적 인물과 그 시대의 운명적 조우를 관찰해 시대정신을 조명했다. 또한 순수학문에서 벗어나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문제사’로서의 역사방법론을 제시했다.
1929년에는 마르크 블로크와 함께 『아날: 경제사회사 연보』를 창간해 ‘새로운 역사학’ 운동을 주도했다. 이른바 아날학파는 페브르와 블로크의 뒤를 이은 20세기 최고의 역사가 브로델에 이르러 구조사와 전체사로 세계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날』에 발표한 2천 편이 넘는 글들은 『역사를 위한 전투』(1953), 『16세기의 종교적 심장에서』(1957), 『완전한 역사를 위하여』(1962), 『르네상스 프랑스에서의 삶』(1977) 등에 수록되었다. 페브르는 역사학과 인접 학문 간의 장벽을 허물어 그야말로 학문적 ‘종합’을 이루고자 했으며, 1935년 『프랑스 백과사전』의 책임편집을 맡아 그 일을 실천했다.
프랑스 북동부 낭시에서 태어나 프랑슈콩테 지방의 중심도시 브장송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헌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여러 언어와 고문서 공부에 관심을 가졌다. 1899년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역사와 지리 교사 자격을 취득했다. 졸업 후 『역사종합평론』(1900년 창간)의 편집인 앙리 베르와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인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많은 논문과 서평을 썼던 이 잡지에 대해 “새로운 역사를 위한 트로이의 목마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11년에 「펠리페 2세와 프랑슈콩테: 1567년 위기의 기원과 결과에 대한 정치적?종교적?사회적 연구」로 박사 학위논문을 발표해 최우수 평가를 받았고, 이듬해 디종 대학에 임용되어 종신직을 보장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4년간의 군복무를 마친 뒤 1919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으로 옮겨, 1933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근대 문명사 교수로 선임될 때까지 가르쳤다.
페브르는 성실한 연구자로서 빼어난 학위논문을 비롯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1928),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라블레의 종교』(1942), 『오리게네스와 데 페리에 혹은 ‘심발룸 문디’의 수수께끼』(1942),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1944) 등 주요 저작을 펴냈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시대 전문가로서 역사적 인물과 그 시대의 운명적 조우를 관찰해 시대정신을 조명했다. 또한 순수학문에서 벗어나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문제사’로서의 역사방법론을 제시했다.
1929년에는 마르크 블로크와 함께 『아날: 경제사회사 연보』를 창간해 ‘새로운 역사학’ 운동을 주도했다. 이른바 아날학파는 페브르와 블로크의 뒤를 이은 20세기 최고의 역사가 브로델에 이르러 구조사와 전체사로 세계 역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날』에 발표한 2천 편이 넘는 글들은 『역사를 위한 전투』(1953), 『16세기의 종교적 심장에서』(1957), 『완전한 역사를 위하여』(1962), 『르네상스 프랑스에서의 삶』(1977) 등에 수록되었다. 페브르는 역사학과 인접 학문 간의 장벽을 허물어 그야말로 학문적 ‘종합’을 이루고자 했으며, 1935년 『프랑스 백과사전』의 책임편집을 맡아 그 일을 실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