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이란 정신의 고립된 산물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환경에 처한 인간이 시대적 과제에 대응했던 지성적 응전의 산물이다. 그래서 지성사 집필의 핵심 과제는 역사적 상황과의 긴밀하고 구체적인 연관 속에서 그 지성적 응전의 과정을 탐구하는 데 있다. 그리고 지성사 연구의 의의는 우리가 사는 현대를 역사적으로 대상화함으로써, 오늘날 당연히 여기는 가치(이를테면 ‘평화통일’)을 낯설게 만드는 한편,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당대가 어떤 맥락에 위치해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이 책 『통일담론의 지성사』는 한반도의 분단 극복 문제에 이론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응답했던 다양한 인물들의 사상적 자취에 대한 지성사적 탐구라고 볼 수 있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에서 이 책을 펴낸 이유는 해방 후 분단 극복을 위해 노력했던 한국 지성들의 사상적 유산을 지성사적 맥락에서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분단 극복을 위해 요구되는 가치와 지향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데 있다.
이 책에 수록된 8명의 통일담론은 해방 후 분단체제의 형성과 고착화 과정에서 각자가 처한 시대현실과 대결한 분투적 지성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무엇보다 한국현대사의 역사적 굴곡과 더불어 그들의 분단·통일에 관한 사유가 변화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장준하와 강만길이 통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문익환의 통일론은 크게 변화했으며, 1987년 6월 항쟁과 이후의 세계사적 탈냉전 현상은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이들의 통일담론은 현재의 고착화된 분단체제 속에 어떤 역사적 진통이 아로새겨져 있는지, 오늘날의 세대가 분단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문제의식과 처방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환기시켜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한국현대사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함은 물론 오늘날 통일의 의미와 가치, 한반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다양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