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재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무중력 화요일』에서 기묘하고 대담한 발상으로 낯선 감각과 이미지의 세계를 선보이면서 우리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기에 다음 시집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번 시집에서도 김재근 시인은 여전히 개성적인 심미적 세계의 매혹과 한층 더 농익은 시적 사유를 보여준다. 음울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개성적인 화법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거침없는 그의 상상력은 우리 문학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진경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뛰어난 은유적인 언어 구사력, 견고한 시의 구조, 따뜻한 현실 의식도 눈여겨 볼만하다. 김재근 시인이 첫 시집에서 사랑의 불확실성에 부유하는 ‘유령의 사랑’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사랑의 한계와 균열과 운명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시들은 삶의 국면들을 포착해내는 고독한 자기 응시와 생의 전모를 통찰하는 깊은 사유가 도드라진다. 사유와 은유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감각을 잘 포착하면서, 낯선 것을 불편하지 않게 이끌어 가는 힘을 보여준다. 김재근 시인은 등단 이후 한결같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매혹적인 시편들을 선보였는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호소력 짙게 다가오던 그의 시 걸음은 이번 시집에서는 더욱 묵직하다. 첫 번째 시집보다 시적 공간을 가까운 현실에 두려고 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접근하기도 수월하다.
김재근 시인은 건설 현장의 토목 감리를 하고 있다. 그는 시와 건설의 성취 과정이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삭막한 백지 위에 첫 삽을 떴을 때, 집중 끝에 한 편의 구조물이 완성되었을 때, 그 기쁨과 자부심이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그는 몇 년 전 인터뷰에서 시가 아름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 예술의 존재 가치가 있다며, 이 아름다움은 처절할 수도 있고 맑을 수도 있는, 감각을 깨우는 그런 감정을 가진 아름다움이며, 이를 위해 자신은 아름다운 시적 공간을 창조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아름다운 시적 공간에 살아 있는 시어가 꿈틀거릴 때, 시는 스스로 빛나며 살아 움직인다는 김재근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믿음을 시로 구현해내고 있다. 시적인 것에 대한 갱신과 개성적인 시적 영토를 개진하는 치열함이 이번 시집 『같이 앉아도 될까요』에 오롯이 담겨 있다.
Contents
1부
장마의 방 / 서로 / 물레와 노인과 아이 / 몽(夢) / 드라이플라워 / 서울, 9호선 / 야음동 / 헤라(HERA) / 차가운 소묘 / 여섯 번째 화병 / 여름의 발 / 백야 / 겨울 벽화 / 심야 동물원 / holiday / 대기자 / 아흐레 밤에 듣는 화음
2부
입김의 방 / 무늬를 위한 시간 / 점자를 읽는 저녁 / 같이 앉아도 될까요 / 겨울 발레리나 / 월요일 / 상상 / 흉상의 원주율 / 유라시아 / 캔버스 / 멜로드라마 / 계곡을 걷는 눈사람 / 반(半) / 인형의 집 / 경포대 / 아제아제 바라아제
3부
네버랜드 / 저녁의 부력 / 유령 연주가 / 그러므로 / 일요일의 우주선 / 숨은 그림 / 새들은 오른손일까 왼손일까 / 종이컵 - take out / 역할극 / 미미 구구단 / 라푼젤 / 혼몽 / 달과 6펜스 앤드 고양이 / 거울의 자매들 / 인형술사 / π / 월요일은 비
해설
유령의 사랑, 거미의 사랑 | 오형엽(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