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돌]은 김지은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퍼즐」, 「코튼 캔디」, 「페이퍼돌」 등 58편의 시가 실려 있다. 김지은 시인은 2015년 [현대시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페이퍼돌]을 썼다.
“신이 왜 우리를 사랑해야 해? 라는 의문으로/이 글은 시작한다”는 전언처럼(「프로아나」), 김지은의 시에는 대답 받지 못할 의문들이 산재해 있다. 가령 “죽은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 묻고(「베이킹파우더」), “신도 배가 고플까” 궁금해하지만(「농람」), 명확한 답을 받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화자를 향해 의문을 던지는 이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는 누군가의 의문을 마주했을 때, “사람이니까 사람을 죽이고 싶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말은 통증을 이해해 본 적 없는 인간이나 할 수 있는 말”이라며 반박하기도 하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나는 단 한 번도 개나 고양이를 발로 찬 적이 없”다며 자신의 사람됨을 변명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답변하는 화자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함을 보여 준다(「밀웜」). 흩어지는 질문들은 비록 답은 들을 수 없지만, 세계를 한 겹 한 겹 벗겨 내며 동시에 존재하는 무수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는 세상을 파악할 때,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개중 어떤 것은 답하기 쉽고, 어떤 것은 왜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엉뚱하고, 어떤 것은 그저 답하기 어려워 질문을 얼버무리게 된다. 끝없이 질문하는 태도는 세계를 이루는 층위 중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 이해될 수 있는 것과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행위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세상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일은 결국 분명하게 누군가를 잘못 진단하는 일과 같다. 무자비하게 내려진 답들은 낱장의 세상들을 한데 뭉쳐 재단하고 이름을 붙이고 정의한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옳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이상한 것이라고. 아이는 자라면서 물었던 것을 또 묻고, 들었던 답변을 또 듣는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을 쉽게 체득하고, 그다지 알아 둘 필요가 없는 것을 쉽게 잊는다. “들숨과 날숨의 순서”처럼 자연스럽게 세상을 정의한다(「가스라이팅」). 하지만 그렇게 체득한 세계는 아이의 세계가 아니라, 부모의 세계다. 나만 볼 수 있는 나의 시야를 온전히 찾기 위해서는 알고 있었던 답변에 의심을 품어야 하고,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잃어야 한다(“들숨과 날숨의 순서를 잊었다 분명 나는 문제가 있어 조금씩 미쳐 가고 있거나 닳고 있는지도 몰라”, 「가스라이팅」).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푼 불안 속에서 사는 일은 위태로운 것이다. (이상 김정빈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