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서론

현대 조직신학의 문제들과 체계적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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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12/04
Pages/Weight/Size 180*120*9mm
ISBN 9791191239034
Categories 종교 > 종교 일반
Description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조직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제시하는 조직신학의 얼개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개신교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오늘날 신학의 필요성과 조직신학의 주요 문제들, 전개 방향을 해설한 책. 그의 대표작이자 20세기 가장 탁월한 조직신학 저작으로 꼽히는 『조직신학』 3부작을 저술하는 와중에 미국 웨스턴 신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인 책으로 판넨베르크 신학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저작으로 꼽힌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판넨베르크는 조직신학의 필요성과 신론, 창조론, 그리스도론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어떻게 진술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그에 따르면 조직신학은 다른 무엇보다 조직신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진리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러한 면에서 현대 사상, 과학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과거 그리스도교 전통, 교리에 담긴 메시지를 존중하면서도 이를 현대라는 지평에 걸맞게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판넨베르크가 제시한 방법은 체계이며 여기서 그는 고전적인 교리들, 즉 신론, 창조론, 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맞물리면서 체계적 일관성을 지니게 되는지를 간명하게 설명한다.

본문 뒤에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현대 신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해주는 글을 실어놓아 본문에 대한 좀 더 입체적인 독해가 가능하게 했다.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가의 ‘신학적 사유’의 깊이를 맛볼 수 있는 얇고도 단단한 저작이다.
Contents
1. 조직신학의 필요성
2. 그리스도교 신론의 문제
3. 과학적 우주론 시대의 창조론
4. 그리스도론의 체계적 구성

해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에 관하여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저서 목록
Author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박정수
1928년 10월 2일 독일 슈테틴(현재 폴란드의 슈테친)에서 세무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루터교에서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유년기에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부모로 인해 신앙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8세 무렵 강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후에 그는 이 체험을 “빛 체험”이라 불렀다. 그는 이런 체험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들과 종교 사상가들의 다양한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문학 교사의 권유로 기독교를 깊이 탐구하여 “지성적 회심”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 기독교가 최선의 종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어린 시절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여 피아니스트나 혹은 카라얀(Herbert von Karajan)과 같은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15세 때 도서관에서 니체의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인으로 전쟁의 끝에 가담하게 되면서 결국 전쟁포로로 1945년 여름을 맞았다. 포로 생활 이후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 1946년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후 1947년 베를린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대학교에서 3학년을 마치고 1950년 여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계속 공부하였다. 그는 교의학과 관련된 많은 신학서적들을 읽었으며, 성서 해석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철학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는 1953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둔스 스코투스의 예정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58년 부퍼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1958~1961)로 3년 뒤에는 마인츠대학교(1961~1968)로 옮겨 교의학을 강의했다. 1963년 시카고대학에 초빙되어 교환교수로만 한 학기를 머물렀다. 그리고 1968년 뮌헨대학교 교수(1968-1994)로 초빙되어 은퇴할 때까지 강의했다.

판넨베르크의 계시 사상은 K. 바르트와 역사를 정신과 자유가 계시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헤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역사가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헤겔의 역사관을 그대로 수용하는 한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기적(proleptic) 사건이며 역사는 그 예기적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견해는 강한 바르트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물론 불트만을 지지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도 강한 비판을 받았다. 헤겔좌파, 마르크스와 에른스트 블로흐에게 철학적 뿌리를 가지는 몰트만도 은연중에 판텐베르크를 비판했다.

저서로서는 『역사로서의 계시』(1961), 『예수, 신과 인간』 (1964),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1969), 『신학적 관점에서의 인간론』 (1983), 『조직신학』 1-3권(1988-1993), 『신학과 철학』(1996), 『유비와 계시』 (2007)
1928년 10월 2일 독일 슈테틴(현재 폴란드의 슈테친)에서 세무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루터교에서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유년기에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부모로 인해 신앙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8세 무렵 강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후에 그는 이 체험을 “빛 체험”이라 불렀다. 그는 이런 체험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들과 종교 사상가들의 다양한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문학 교사의 권유로 기독교를 깊이 탐구하여 “지성적 회심”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 기독교가 최선의 종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어린 시절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여 피아니스트나 혹은 카라얀(Herbert von Karajan)과 같은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15세 때 도서관에서 니체의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인으로 전쟁의 끝에 가담하게 되면서 결국 전쟁포로로 1945년 여름을 맞았다. 포로 생활 이후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 1946년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후 1947년 베를린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대학교에서 3학년을 마치고 1950년 여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계속 공부하였다. 그는 교의학과 관련된 많은 신학서적들을 읽었으며, 성서 해석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철학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는 1953년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둔스 스코투스의 예정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58년 부퍼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1958~1961)로 3년 뒤에는 마인츠대학교(1961~1968)로 옮겨 교의학을 강의했다. 1963년 시카고대학에 초빙되어 교환교수로만 한 학기를 머물렀다. 그리고 1968년 뮌헨대학교 교수(1968-1994)로 초빙되어 은퇴할 때까지 강의했다.

판넨베르크의 계시 사상은 K. 바르트와 역사를 정신과 자유가 계시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헤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역사가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헤겔의 역사관을 그대로 수용하는 한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기적(proleptic) 사건이며 역사는 그 예기적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견해는 강한 바르트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물론 불트만을 지지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도 강한 비판을 받았다. 헤겔좌파, 마르크스와 에른스트 블로흐에게 철학적 뿌리를 가지는 몰트만도 은연중에 판텐베르크를 비판했다.

저서로서는 『역사로서의 계시』(1961), 『예수, 신과 인간』 (1964),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1969), 『신학적 관점에서의 인간론』 (1983), 『조직신학』 1-3권(1988-1993), 『신학과 철학』(1996), 『유비와 계시』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