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동산수초 선사의 어록을 번역한 국내 최초의 책이다. 동산수초(洞山守初, 910~990) 선사는 중국 오가칠종 가운데 운문종을 개창한 운문선사의 제자이자 ‘마삼근’이라는 화두로 잘 알려진 선승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의 어록 전체를 번역 출간한 적은 없다. 『임제록』이나 『육조단경』 등은 수없이 많이 번역되고 있지만, 『동산수초어록』이 번역, 출판된 것은 희귀한 일이다.
이 책을 번역한 영곡 스님은 널리 알려진 스님은 아니다. 그러나 번뜩이는 지혜로 선어록을 번역하는 솜씨가 대단하고, 탁월한 해석 능력을 갖추고 있어 앞으로 불교계에서 꼭 주목해야 할 분이다. 현재는 경상남도 통영시 무우사에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선어록을 번역하며 한가한 무사인(無事人)의 삶을 살고 계시다. 스님은 주로 지금까지 번역되지 않은 선어록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번역 문장이 매우 매끄럽고 의미도 분명하게 처리하는 점이 영곡 스님 번역본의 강점이다.
Contents
드러내는 말 … 5
해제 … 11
상당법문 … 21
하나. 이러한 방법을 여태껏 써왔다면 … 21
둘. 머리털은 덥수룩 귀는 뾰족 … 27
셋. 근기가 밝은 이는 스스로 어둡게 하여 … 45
넷. 하늘이 맑게 개니 물길을 열고 … 50
다섯. 법의 눈으로 정명을 알아야만 … 61
여섯. 말로는 전사할 수 없고 … 70
일곱. 말 속에 말이 있음을 사구(死句)라 하고 … 86
여덟. 깨치려면 반드시 확실히 깨쳐야 하고 … 101
아홉. 동산의 여기 … 113
열. 법고가 막 울리자 대지가 전부 거둔다 … 136
열하나. 바로 마음이 바로 부처님 … 137
열둘. 신발 값을 물을 날 … 141
열셋. 천향만리를 행각하면서 … 144
열넷. 범상함을 전환하여 성스러움을 이루는 도리 … 167
열다섯. 선사(禪師)라면 … 171
열여섯. 눈을 꼬집어 망상하지 마라 … 175
열일곱. 너를 세 방 때려야겠다 … 208
열여덟. 동산의 두루한 즐거움은 … 211
ㄱ. 짚신이 몇 켤레나 닳았나 … 257
ㄴ. 외길이 아득히 멀 때는 … 258
ㄷ. 생사를 면하는 법 … 258
ㄹ. 초산이 거꾸로 선다 … 259
ㅁ. 수레나 모는 놈 … 259
ㅂ. 천리만리로구나 … 260
미주 … 261
찾아보기 … 279
참고문헌 … 285
후기 … 286
Author
동산수초,영곡
중국 오가칠종 가운데 운문종을 개창한 운문선사의 제자이자 ‘마삼근’이라는 화두로 잘 알려진 선승이다. 동산 수초(洞山守初) 스님의 선맥 계보는 이렇다. ‘육조 혜능(六祖慧能)―청원 행사(靑原行思)―석두 희천(石頭希遷)―천황 도오(天皇道悟)-―용담 숭신(龍潭崇信)―덕산 선감(德山宣鑑)―설봉 의존(雪峰義存)―운문 문언(雲門文偃)―동산 수초.’
동산 스님은 910년 봉상부(鳳翔府)의 양원[良原: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숭신현(崇信縣)]의 부씨(傅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이 16살이 되자, 어머니께 출가를 간청했다. 위주[渭州: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공 동산으로 가서 지심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경주[涇州: 감숙성(甘肅省)]의 율종사찰인 사리율사(舍利律寺)로 가서 정원(淨圓)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출가한 절이 율종에 속하였던 터라 처음에는 율장을 익히는 데 공력을 들였다. 하지만 그다지 흡족한 공부가 아니라고 여겨 행각을 하다가 지금의 광동성 유원현(乳源縣) 북쪽의 운문산에 이르렀다.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스님을 찾아뵈었다.
그 후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원(乾祐) 원년(948)에 운문산을 떠나 양양의 동산사(洞山寺)로 가서 40여 년을 주석하였는데, 이때 그 도가 천하에 두루 전해져서 수많은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태평흥국 6년(981)에 상서인 석공(石公)과 양수(襄帥)인 조공(趙公)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동산 스님의 뛰어난 도행을 알리고 아울러 나라를 교화하여 성인의 교화를 더욱 두터이 했음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북송 조정에서는 종혜선사(宗慧禪師)라고 시호를 드리고 자색 가사를 드림으로써 당간의 깃발을 뛰어나게 하였다. 아무런 병환도 없다가 송 태종 순화 원년(990) 가을 7월에 결가부좌를 한 채 세수 81세, 법랍은 65하로 원적에 들었다.
중국 오가칠종 가운데 운문종을 개창한 운문선사의 제자이자 ‘마삼근’이라는 화두로 잘 알려진 선승이다. 동산 수초(洞山守初) 스님의 선맥 계보는 이렇다. ‘육조 혜능(六祖慧能)―청원 행사(靑原行思)―석두 희천(石頭希遷)―천황 도오(天皇道悟)-―용담 숭신(龍潭崇信)―덕산 선감(德山宣鑑)―설봉 의존(雪峰義存)―운문 문언(雲門文偃)―동산 수초.’
동산 스님은 910년 봉상부(鳳翔府)의 양원[良原: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숭신현(崇信縣)]의 부씨(傅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이 16살이 되자, 어머니께 출가를 간청했다. 위주[渭州: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공 동산으로 가서 지심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경주[涇州: 감숙성(甘肅省)]의 율종사찰인 사리율사(舍利律寺)로 가서 정원(淨圓)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출가한 절이 율종에 속하였던 터라 처음에는 율장을 익히는 데 공력을 들였다. 하지만 그다지 흡족한 공부가 아니라고 여겨 행각을 하다가 지금의 광동성 유원현(乳源縣) 북쪽의 운문산에 이르렀다.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스님을 찾아뵈었다.
그 후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원(乾祐) 원년(948)에 운문산을 떠나 양양의 동산사(洞山寺)로 가서 40여 년을 주석하였는데, 이때 그 도가 천하에 두루 전해져서 수많은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태평흥국 6년(981)에 상서인 석공(石公)과 양수(襄帥)인 조공(趙公)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동산 스님의 뛰어난 도행을 알리고 아울러 나라를 교화하여 성인의 교화를 더욱 두터이 했음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북송 조정에서는 종혜선사(宗慧禪師)라고 시호를 드리고 자색 가사를 드림으로써 당간의 깃발을 뛰어나게 하였다. 아무런 병환도 없다가 송 태종 순화 원년(990) 가을 7월에 결가부좌를 한 채 세수 81세, 법랍은 65하로 원적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