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과 모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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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4/09/30
Pages/Weight/Size 128*186*20mm
ISBN 9791189217365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시/희곡
Description
백석과 모네의 만남,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새로운 예술적 경험

한 권의 책이 시와 그림을 잇는 다리가 된다. 현대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시인 백석과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가 한자리에 모였다. 백석의 시 100편에 클로드 모네의 명화 125점이 어우러진 시화집, 『백석과 모네』가 출간되어, 한국 문학과 서양 미술의 아름다운 융합을 선보인다.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시리즈의 스페셜 에디션인 『백석과 모네』는 백석의 시에 어울리는 모네의 그림을 신중히 선정하여 두 예술가의 작품이 서로 대화하듯 독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백석의 시가 지닌 서정성과 모네의 그림이 지닌 색채의 조화는 독자에게 새로운 예술적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백석의 시는 일상의 삶과 고향에 대한 진솔한 애정, 자연과 일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다. 이러한 감성은 클로드 모네의 풍경화, 특히 수채화 같은 색감과 섬세한 붓터치로 표현된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더욱 깊이 있게 전달된다. 모네의 그림은 시의 감성을 한층 돋보이게 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Contents
내가 생각하는 것은 10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12
‘호박꽃 초롱’ 서시 14
광원(曠原) 18
귀농(歸農) 20
칠월(七月) 백중 24
통영(統營) 28
삼호(三湖)-물닭의 소리 1 30
물계리(物界里)-물닭의 소리 2 32
대산동(大山洞)-물닭의 소리 3 34
남향(南鄕)-물닭의 소리 4 36
야우소회(夜雨小懷)-물닭의 소리 5 38
꼴두기-물닭의 소리 5 40
촌에서 온 아이 42
동뇨부(童尿賦) 46
나 취했노라 48
통영(統營) 50
흰 바람벽이 있어 54
탕약(湯藥) 58
여우난골족(族) 60
목구(木具) 64
고방 68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70
정주성 74
비 76
하답(夏畓) 78
바다 80
산(山)비 82
머루밤 84
고향(故鄕) 86
쓸쓸한 길 88
추야일경(秋夜一景) 90
늙은 갈대의 독백 92
절망(絶望) 96
청시(靑枾) 98
수라(修羅) 100
자류(?榴) 102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104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108
국수 112
산지(山地) 116
주막(酒幕) 118
흰밤 120
고야(古夜) 122
모닥불 126
가즈랑집 128
오리 망아지 토끼 132
초동일(初冬日) 134
적경(寂境) 136
미명계(未明界) 138
성외(城外) 140
추일산조(秋日山朝) 142
여승(女僧) 144
노루 146
절간의 소 이야기 148
오금덩이라는 곳 150
시기(?崎의 바다 152
창의문외(彰義門外) 154
정문촌(旌門村) 156
여우난골 158
삼방(三防) 160
오리 162
연자간 166
황일(黃日) 168
이두국주가도(伊豆國湊街道) 170
창원도(昌原道)-남행시초(南行詩抄) 1 172
통영(統營)-남행시초(南行詩抄) 2 174
고성가도(固城街道)-남행시초(南行詩抄) 3 176
삼천포(三千浦)-남행시초(南行詩抄) 4 178
북관(北關)-함주시초(咸州詩抄) 1 180
노루-함주시초(咸州詩抄) 2 182
고사(古寺)-함주시초(咸州詩抄) 3 184
선우사(膳友辭)- 함주시초(咸州詩抄) 4
186
산곡-함주시초(咸州詩抄) 5 190
산숙(山宿)-산중음(山中吟) 1 194
향악(饗樂)-산중음(山中吟) 2 196
야반(夜半)-산중음(山中吟) 3 198
백화(白樺)-산중음(山中吟) 4 200
석양(夕陽) 202
외갓집 204
가무래기의 낙(樂) 206
멧새 소리 208
박각시 오는 저녁 210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212
안동(安東) 216
함남도안(咸南道安) 218
구장로(球場路)-서행시초(西行詩抄) 1 220
북신(北新)-서행시초(西行詩抄) 2 222
팔원(八院)-서행시초(西行詩抄) 3 224
월림(月林)장-서행시초(西行詩抄) 4 226
수박씨, 호박씨 228
산(山) 232
북방(北方)에서-정현웅(鄭玄雄)에게 234
허준(許俊) 238
조당(?塘)에서 242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246
개 248
나와 지렝이 250
머리카락 252
적막강산 254

시인 소개 256
화가 소개 260
Author
백석,콜로드 모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