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수술을 끝내고 아래층 진료실로 내려가는데 한 젊은 청년이 다가와 제크나이프로 위협하며 주먹과 발로 광란의 폭행을 가한다. 의사는 예기치 못한 환자의 갑작스러운 폭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경찰서에 간 청년은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가 자신을 너무 아프게 했고 기대만큼 병도 호전되지 않아 폭행했다고 진술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 같다는 판단에, 의사는 그를 고소하지 않고 용서해 주지만 남몰래 많은 눈물을 흘린다.(14p ‘메스’ 中)
모두가 선망의 직업으로 여기는 의사, 그러나 실제 의료현장은 전장터나 다름없다. 평생을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살아온 저자는, 그간의 진료과정에서 겪어온 수많은 희로애락을 특유의 솔직하고 진솔한 언어로 담아냈다.
저자는 40년 넘게 15번 메스를 써온 자신을 15번파 소폭(작은 조폭)이라 칭하면서도, 새벽 다섯 시면 제일 먼저 병원에 출근해 화단 주위를 가꾸고 물을 주며 꽃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감수성을 지니기도 했다.(17p ‘샐비어’) 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연을 만들어 가족들과 한강 둔치에서 날리는데, 연에 자신이 수술한 환자들의 쾌유를 비는 글을 적기도 하고, 연을 날리면서 하늘나라로 떠난 두경부암 환자들과 교감을 하기도 한다.(31p ‘연’ 中)
신간 『자신에 미쳐라』에는 의사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저자가 겪어온 수많은 감정들이 다양하게 녹아있다. 의사의 명예를 내세우기 보다, 감추고 싶은 실수와 괴로운 일화들까지 고스란히 고백하면서 독자들과 더 가까이 소통하고자 했다. 오랜 베테랑 의사가 담아낸 삶의 기록들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만나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