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한 만남

열세 살에 혼자 피난 내려온 평양소년 오동걸의 이야기다. 그날 피난길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반듯한 일본의 어린이였다가 명석하고 부유한 이북의 소년이었다. 1.4후퇴인줄도 모르고 길을 메운 인파 속에서 남쪽만 바라보고 먹을 걸 찾고 길을 걸어야 하는 건 너무나 흔한 모습이라 새삼 말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이다. 그렇게 흘러흘러 서울까지 들어와 할아버지가 되도록 살았다. 공장을 다니고 군대를 가고 가족도 만들었다. 되지 않는 환경에서도 책을 읽고 콘사이스를 외웠다. 그래서 짊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짐 속에는 이북의 시원한 이야기가 질펀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일본에서, 이북에서, 이남에서 살아 온 모습이 책 속에는 경계 없이 하나로 어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