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보좌관이 정치인을 꼼꼼히 기록한 대한민국 최초의 책.”
“대선 지지율 1위 정치인의 과거를 살펴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다.”
보좌진들이 밝히는 이낙연 내공의 비밀. 오늘의 이낙연을 만든 것은 인사치레가 아닌 몸에 밴 겸손, 어떤 분야에서건 현장 중심의 활동을 하는 것, 명함에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표기하고 누구에게서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받는 데서 드러나듯 상대의 지위 고하를 떠나 경청하려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저자는 2020년 1월 총리실 정책민원팀장직에서 물러나기까지 10년 동안 이낙연 전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 이번에 곁에서 지켜본 감회와 기억을 중심으로 이 전 총리의 정치적 역정을 증언하는 책을 펴냈다. 또 이 전 총리가 국회의원 4선(14년), 도지사 3년, 국무총리 2년 8개월을 거치는 동안 함께 가까이서 보좌했던 사람들(보좌진들) 30명가량과 관련 공무원들을 만나면서 증언과 사례, 후일담을 모아 책에 담았다. 저자가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자신보다 NY(이낙연)를 더 모르거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를 평가하는 걸 보면서, 가까이서 보고 겪은 일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작은 보답이자 의무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한다. 그러면서도 보좌관이라면 결국 한통속 아닐까라고 여겨질 것을 걱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글은 사전에 NY에게 보여주고 검열을 받거나 기획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힙니다. 최대한 포장이나 과장을 하지 않고 담담히 얘기하자는 결심을 항상 옆에 두고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호칭도 존칭이 따라 붙지 않는 ‘NY’라고 적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히려 저자는 보좌관이라는 신분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을’의 반란으로 봐주기를 바랐다.
Contents
추천의 글
들어가는 글
내 인생의 이낙연
감동을 파는 장사꾼
저는 이렇게 살 자신이 없습니다.
“고개 들어, 이 사람아”
몸에 밴 겸손
츤데레, 이낙연
소비자 중심주의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
“나는 그런 식으로 정치하지 않네”
감동은 사소한 데서 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눈빛
“난 복지를 하러 왔네”
묵직한, 때론 외롭고 고독한 길
흙수저 보좌관, 정치에 희망을 품다
보좌관, 이낙연을 말하다
넥타이를 하루 전에 골라두는 남자
정치미식가, 대충은 없다
정글 안에서 품격을 외치다
글씨에 마음을 담다, 낙연체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야기
이주사? “함께 일하기 가장 편했던 사람”
“나, 다시는 선거운동 안 할 거야”
의전은 싫어하지만 상대에 대한 격식은 높인다
곧이곧대로
이재민과 유가족을 대하는 NY의 자세
발로 뛰는 취재기자, 고독사 문제를 우리 사회의 화두로 던지다
가짜뉴스? 허위 조작 정보!
'신뢰는 진정성에서 나온다'
NY의 꾸중을 피하는 방법
이낙연 아카데미
이낙연 아카데미의 수업 방식
의전이란 이런 것이다
마음을 전하는 외교
일일점검회의: 늘 깨어 있게 하소서
조직의 위상을 높이는 직거래 방식
실전 사례: 품격을 높이는 NY의 빨간펜
이낙연의 SNS
NY가 사투리를 쓰지 않는 이유
NY의 갬성? 감성!
마치는 글
Author
양재원
법대를 졸업하고 월급 35만 원을 받으며 서울 변두리에서 2년을 고시원 총무로 일했다. 어느 날 우연히 국회 인턴 모집 공고를 보고 국회에 들어서게 됐다. 싸움만 일삼는 혐오스러운 곳으로만 알았던 국회였다. 그러나 그 안에 수많은 희망이 꿈틀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고시 공부를 접고 직업 보좌관의 길을 걷기로 했다. 2년 동안 쌓은 국회 경력을 갖고 NY의 비서관으로 인연을 맺은 후 전남도지사 당선까지 4년을 같이 일했다. NY가 도지사로 있던 시기에는 다시 국회로 돌아와, 시시각각 변하는 치열한 세계에서 일중독에 빠져 박주민 의원 등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러다 대한민국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졌다. NY가 국무총리가 된 것. 그리고 의원 시절 NY의 비서관을 했던 인연으로 팔자에 없는 행정부(총리실) 공무원으로 2년 반을 일했다. 정치가 희망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기대의 끈을 쥔 채, 평범한 청년이 겪은 국회와 행정부의 경험을 우리 정치에 보태는 것이 그동안 받은 국민의 세금에 대한 보답이라고 여긴다.
법대를 졸업하고 월급 35만 원을 받으며 서울 변두리에서 2년을 고시원 총무로 일했다. 어느 날 우연히 국회 인턴 모집 공고를 보고 국회에 들어서게 됐다. 싸움만 일삼는 혐오스러운 곳으로만 알았던 국회였다. 그러나 그 안에 수많은 희망이 꿈틀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고시 공부를 접고 직업 보좌관의 길을 걷기로 했다. 2년 동안 쌓은 국회 경력을 갖고 NY의 비서관으로 인연을 맺은 후 전남도지사 당선까지 4년을 같이 일했다. NY가 도지사로 있던 시기에는 다시 국회로 돌아와, 시시각각 변하는 치열한 세계에서 일중독에 빠져 박주민 의원 등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러다 대한민국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졌다. NY가 국무총리가 된 것. 그리고 의원 시절 NY의 비서관을 했던 인연으로 팔자에 없는 행정부(총리실) 공무원으로 2년 반을 일했다. 정치가 희망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기대의 끈을 쥔 채, 평범한 청년이 겪은 국회와 행정부의 경험을 우리 정치에 보태는 것이 그동안 받은 국민의 세금에 대한 보답이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