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한 배선옥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오렌지모텔』을 출간했다.
배선옥 시집 『오렌지모텔』은 묘사적 서술이 시 전체를 끌어가는 리얼리즘 서정시이다. 진술로 쓸 수 있는 부분도 묘사를 통해 그림을 그리듯 시를 쓰는 것이 배선옥 시의 특징이다. 그림을 그렸는데 거기에 설명을 달지는 않겠다는 듯, 묘사와 묘사로 이어지는 시 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묘사와, 진술일 수도 있었던 묘사, 그 사이를 면밀히 살피며 읽는 것이 배선옥의 시를 읽는 귀한 재미이다. 굳이 그 경계를 그어놓지 않는 창작법은 배선옥의 독특한 작법이라 하겠다.
배선옥의 시집 『오렌지모텔』에서는 남다른 “아즈텍의 전사”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고 정윤천 시인은 말한다. 산다는 것은 하나도 ‘장렬한’ 것이 아니라고,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의 뒤꽁무니나 바라보는 것이라고, 그게 어쩌면 “20분”이라는, 저만큼이나 지극했을 역설의 토설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이 짐승의 시간(2000년대의/ 한국) 속에서, “교육비와 보험료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 아즈텍 여전사의 회사로 가는” 버스도 이미 전 정거장에서 출발해버렸다. 그래도 배선옥 시인의 시들은 “살아 있는 일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조개젓을 파는 할머니의 오후 6시의 옆구리를 지나서, 배선옥의 시들은 “저기 저 팥배나무 숲” 앞까지 몸서리가 나도록 이른다.
뒤표지에 시집 출간 발문을 쓴 최종천 시인은 배선옥 시인의 대해 이렇게 말한다.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시인들을 추방했는데 그 이유는 언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는 언어를 믿어도 되지만 철학은 언어를 의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를 믿는 시인은 행복하다. 배선옥 시인은 언어에 대해서도 관념에 대해서도 냉담하다. 언어를 다루는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시의 언어가 주제나 의미를 앞서가지는 않고 그런대로 균형을 취하고 있다. 우리 시에는 언어가 너무 앞서가는 시가 많다. 그것은 포즈다. 그래서 여느 시인들의 많은 시가 공허하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배선옥 시인의 시는 “시시껄렁한 일상을 별로 시적이지도 않은 표현을 통하여 시로 말하고 있다. 이런 시시껄렁하고 작은 것들이 우리들의 행복이다. 많은 수고를 지불하고 얻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이란 자연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배선옥 시인이 이 시집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Contents
제1부 메리 크리스마스
참 좋은 날·13
변방(邊方)사람들·14
로뎀 요양병원·16
메리 크리스마스·17
20분·18
암캐·20
남동공단 블루스·21
봄밤·22
푸른 계곡·23
그해 겨울에서 봄까지·24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25
청회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26
심야영업 노래방 삐끼·27
13시 30분·28
꽃·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