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은 세계 현대사에서 가장 큰 공중보건 위기이다. 또한 공중보건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회 모든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 인류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갈팡질팡했다. 과연 팬데믹이라는 태풍이 지나고 만나게 될 세상은 어떨지 여전히 혼란스럽다. 애당초 팬데믹의 온전한 실체 파악은 가능하지 않겠다. 팬데믹의 경험과 감상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팬데믹에는 수많은 서사가 담긴다. 그래서 팬데믹의 서사를 얘기할 때 화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해진다. 많은 이야기가 모여야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 어떤 사람은 팬데믹이 경제에 미친 영향에 관심이 많고 또 어떤 사람은 방역과 의료 자체에 더 관심을 갖는다. 팬데믹 제목을 단 책들을 보면 투자 관련서가 꽤 많다. 이 와중 투자에 몰두하는 이들도 있다.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흩어진 조각들을 모아 팬데믹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보려는 시도는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인권을 잣대로 팬데믹 과정을 돌아본다. 팬데믹 기간에 가장 강력한 주제는 공중보건이다. ‘공공의 건강과 생명을 지킨다’는 공중보건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강력한 방역 지침이 집행되었다. 공중보건을 위한 노력은 그동안 우리가 이해하던 인권의 의미와 충돌하는 광경들을 종종 빚었다. 팬데믹은 잠복했던 인권 문제들을 들춰내기도 하고 곳곳에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공중보건을 위한 다양한 방역 지침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개인의 자유들과 충돌하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왜 우리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가? 나의 며칠간 행적이 이처럼 무차별하게 털리고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하는가? 감염자는 왜 꼭 강제로 격리되고 치료받아야 하는가? 요양 시설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백신을 반드시 맞아야 하는가?개인의 권리는 공중보건을 위해 제한되기 일쑤였다. 한편으로 공중보건의 명분에 동의하지만 개인에 대한 제약이 공중보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지 그 적절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팬데믹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차별과 혐오라는 상처가 남았다. 소수자와 사회 약자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코로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들을 덮쳤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나 바이러스의 전파는 불평등했다. 취약한 곳으로 파고들었고 감염자가 드러날 때마다 개인 또는 환자를 둘러싼 집단이 비난받았다. 처음 중국인이 대상이었고, 다음은 신천지 교인, 대구 사람, 성 소수자 등이 대상이었다. 집단 감염이 발생할 때마다 그 집단은 낙인찍히고 혐오, 차별이 뒤따랐다. 코로나는 낙인과 혐오를 촉발하는 방아쇠 기능을 하였다. 코로나라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하나씩 뿌리 뽑혀 날아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진단받은 확진자 자체가 혐오 대상이 되었다. 확진자는 어떤 취약 집단에 속했을 가능성이 크고, 최소한 개인 부주의로 전염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극도로 주의하면서 거리 두기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확진자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부주의함에 대한 비난은 내재했던 차별, 혐오 감정과 결합하기도 한다.
코로나 방역과 진료 일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킨 의료진들은 팬데믹의 무게를 두 어깨로 떠받쳤다. 찬사가 쏟아지는 한편, 코로나 업무 이행자라는 이유로 본인과 가족들은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취약한 공공의료로 팬데믹의 압력을 다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건소와 공공병원은 팬데믹 태풍 속에 우리를 지켜준 대피소였다. 팬데믹은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불평등을 고조시켰다. 재택 근무가 가능한 노동과 그렇지 않은 노동으로 분화되면서 노동의 불평등을 가시화하고, 돌봄의 붕괴로 누가 돌봄 노동을 수행할 것인가를 놓고 젠더 불평등 문제가 대두한다. 농촌 노인들은 이중으로 고립한다. 개인 보호 장비, 진단 장비, 백신 등이 절대 부족한 가난한 나라에서 국제연대는 너무도 멀다. 노동, 젠더, 지역 그리고 국가 간 불평등 심화는 팬데믹의 또 다른 단면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기후 위기의 서막일 뿐이라는 비관론이 제기된다. 야생에 존재하던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가 인간에게 넘어와 팬데믹을 유발하는 과정은 인류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근본적인 성찰과 대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는 계속 반복되리라. 이런 두려움을 품고 인권 관점으로 팬데믹을 살펴본다. 팬데믹이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속살을 들춰봄으로써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를 어떻게 메꾸고 단단히 다질지 생각해보겠다
Contents
추천 글 인권을 잣대로 팬데믹 진단하고 대안 찾기 _ 이화영
여는 글 마지막 버팀목인 인권으로 팬데믹 상처 돌아보기
1부 코로나 팬데믹과 인권
1장 시작과 끝 ·18
2장 사회 전반의 위기 ·32
3장 마스크 논쟁 ·41
4장 거리 두기와 이동권 제약 ·47
2부 방역과 의료 현장의 인권
5장 한국형 방역 모델의 탄생 ·58
6장 동선 추적과 공개 그리고 격리 ·67
7장 코로나 치료의 마지막 보루 공공병원 ·76
8장 팬데믹과 의료 인력의 고난 ·85
9장 코로나 치료 현장의 인권 ·96
10장 비코로나 환자의 의료 공백 ·105
11장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115
3부 사회 약자와 소수자의 고난
12장 노인들의 고립과 죽음 ·138
13장 여성과 젠더 불평등 ·146
14장 어린이, 청소년과 교육 위기 ·161
15장 장애인의 고난 ·173
16장 인종 차별과 이주민, 난민 ·186
17장 낙인과 차별의 희생양, 성 소수자 ·196
18장 막다른 골목의 노숙인 ·203
19장 군대와 교정 시설, 보호 시설의 취약성 ·209
4부 변화에 직면한 우리 사회
20장 노동 변화와 필수 노동자의 위기 ·218
21장 돌봄 위기 ·228
22장 다양한 변화에 직면 ·234
23장 불평등의 심화 ·240
24장 팬데믹과 국제 협력의 실패 ·246
25장 언택트 시대와 의료 민영화 ·252
5부 기후 위기 그리고 코로나 이후
26장 생태 변화와 기후 위기 ·260
27장 코로나 이후 전망 ·269
Author
백재중
신천연합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가 없는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로 활동한다.『여기 우리가 있다』(2020), 『자유가 치료다』(2018),『의료 협동조합을 그리다』(2017),『삼성과 의료민영화』(2014)를 쓰고 펴냈다
신천연합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가 없는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로 활동한다.『여기 우리가 있다』(2020), 『자유가 치료다』(2018),『의료 협동조합을 그리다』(2017),『삼성과 의료민영화』(2014)를 쓰고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