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부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 ‘폴 볼커’, 달러의 미래를 통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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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07/10
Pages/Weight/Size 160*232*35mm
ISBN 9791187150725
Categories 경제 경영 > 경제
Description
‘세계의 경제대통령’이자 달러의 운명을 바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
인플레이션 괴물을 물리친 ‘인플레 파이터’로써 케네디, 닉슨, 카터, 레이건,
오바마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가장 신임했던 이코노미스트!
‘폴 볼커’의 역작, 국내 최초 발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장으로 꼽히는 폴 볼커 전(前) 미 연준 의장의 저작이 국내 최초로 출간되었다. ‘달러의 부활’(원제: Changing Fortunes)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달러가 흥·망·성·쇠하는 역사적 변곡점들을 심도 있게 다룬다. 저자는 전 세계 자본과 금융, 통화질서를 관장했던 고위 관료들과 무소불위 권력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을 마치 한편의 서사극처럼 책장을 넘기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도록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이 책 출간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중대한 경제정책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에 국가정상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온갖 일화들과 흥미로운 통찰력들로 가득한 이 책은 미래의 역사가들에게 금광이 될 것이다”라고 격찬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저자인 폴 볼커가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내내 국제통화 무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른바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에 오른 뒤 전례 없는 통화긴축정책으로 대대적인 인플레이션 위기를 막아내면서 ‘인플레 파이터’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아, 대형은행들의 위험한 자기매매 및 헤지펀드 거래를 규제하는 강력한 정책을 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볼커의 정책은 ‘볼커룰(Volcker Rule)’이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금융과잉을 막는 예방장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역사는 운율을 달리해 반복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중남미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경제위기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오일쇼크’와 ‘팬데믹’, ‘미-일 긴장관계’와 ‘미-중 대립관계’ ‘블랙먼데이’와 크고 작은 금융패닉 사태들은 묘한 데자뷰를 이룬다. 수십 년 전 저자가 이 책에서 설파한 것들은 지금의 현실을 진단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미래를 전망한다. 제로금리에서 마이너스금리로 넘어가는 시대에 미래의 통화가치를 가장 적확하게 통찰해낸 이 책이 유독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Contents
폴 볼커의 프롤로그 : 그것은 마치 한편의 대하소설 같았다!
교텐 토요오의 프롤로그 : 힘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가?

chapter 1. 새로운 세계질서 _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스타일
- 깨끗한 백지
- 그렇게 시작되었다!
- 게임의 법칙
- 기억의 소환
*1944-1959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2. ‘브레튼우즈’란 덤불숲 속에서 _1960년대의 10년
- 흥미로운 궁금증
- 미국 재무부에서의 관점
- 브레튼우즈에 대한 공격
- 성장의 추억
- 미소와 침묵, 그리고 이따금씩 졸음
*1960-1969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3. 붕괴
- 긴 드라마의 시작
- 돌이킬 수 없는 길
- 평가절하의 함의
- 경제적 경쟁자의 비애
*1970~1972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4. 표류
- 불길한 힘
- 압박의 순간들
- 개혁의 흔적
- 위기의 징조들
*1973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5. 달러의 위기
- 공허한 희망
- 오일쇼크
- 새로운 게임의 룰
- 기관차와 달러
- 실패한 실험
*1974-1978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6. 인플레이션과 싸우다
- 일촉즉발 위기의 중심에서
- 통화정책의 온도
- 쇠귀에 경 읽기
*1979-1981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7. 중남미 부채위기
- 가장 주목할 만한 교훈
- 위기의 기원
- 위기와의 조우
- 위기 이후
- 빚더미가 남긴 것들
*1982-1984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8. 슈퍼 달러를 끌어내려라! _플라자합의
- 근본적인 질문
- 시장개입 논쟁
- 새로운 수단, 새로운 사람들
- 달러는 이대로 추락할 것인가?
*1985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9. 또 한 번의 실험, 또 한 번의 실패 _루브르합의, 그리고 블랙먼데이
- 불확실성의 시대
- 루브르합의의 명과 암
- 성공의 조건
*1986-1989년 글로벌 주요 금융 통화 타임라인

chapter 10. 새로운 국제질서 혹은 새로운 민족주의
-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
- 이상적이되 혁명적이지 않은

*옮긴이의 글 : 달러가 늘 우리의 문제여야 한다면 _안근모
*인명 찾아보기
Author
폴 볼커,교텐 토요오,안근모
1927년 미국 뉴저지 주 케이프 메이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다양한 학생모임에서 활동했고, 정치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또래들과 선생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정책에 특화한 프린스턴대학교 우드로 윌슨 스쿨(Woodrow Wilson School)을 최우등으로 마쳤다. 그는 졸업논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실패한 점을 비판했다.

뉴욕 연준에서 리서치 보조로 일하다가 하버드대학원에 진학해 정치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런던정경대에서 수학했다. 1952년 뉴욕 연준에서 풀타임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하다 1957년에 체이스맨해튼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금융 담당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이후 1962년에 자신의 멘토인 로버트 루사에 의해 재무부 금융분석국장으로 등용되었고, 1963년 미국 재무부 통화 담당 차관보에 임명되었다. 1965년에 다시 체이스맨해튼은행 부행장 겸 기획 담당 임원으로 있다가 1969년에 닉슨 행정부의 부름을 받고 1974년까지 재무부 국제통화 담당 차관을 역임했다. 1971년 8월 15일 금태환 정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볼커는, 이 일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고 회고했다.

1975년 뉴욕 연준 총재를 거쳐 1979년 8월 카터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국 연준 의장에 취임했다. 볼커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나타났던 대대적인 인플레이션을 공격적인 통화긴축정책으로 퇴치하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1980년 3월 14.8%까지 올라갔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1983년에는 3% 밑으로 떨어졌다. 볼커 의장의 연준은 1979년 평균 11.2%이던 연방기금금리를 1981년 6월 20%까지 인상했다. 1981년 프라임 레이트(prime rate)가 21.5%까지 상승하는 과정에서 경기침체에 빠졌고(1980~1982년), 실업률이 10% 위로 올라갔다. 당시 연준에 항의하는 전례 없는 강력한 시위가 발발했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와 연준 본관 에클스빌딩을 봉쇄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볼커는 언제까지 인플레이션과 싸울 것이냐는 세간의 항의에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잡을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볼커의 뚝심은 성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이 떨어지면서 미국 경제성장의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이후 1982년부터 통화긴축을 풀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경제성장세를 재개했다. 볼커는 1983년 레이건 행정부에서 연준 의장에 연임되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악화하는 미국의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에 대응하면서, 독일과 일본 등이 달러에 대해 자국 통화를 절상하도록 유도했다.

1987년 8월 연준 의장에서 퇴임한 뒤에도 볼커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멘토로 활약했다. 후임자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볼커처럼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여든이 넘은 볼커에게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직(2009년 2월-2011년 1월)을 맡겼다. 볼커는 은행들의 자기매매와 프라이빗 에쿼티 및 헤지펀드와의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의 강력한 금융규제를 발표했다. 이러한 볼커의 정책은 ‘볼커룰(Volcker Rule)’이라 불리며, 금융과잉을 막는 예방장치 역할을 해왔다.

“연준이 금리인하를 더 하지 않아 미국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면서 미국의 적은 중국이 아니라 연준”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노골적인 불평에, “중앙은행은 정치적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공정성을 지켜내야 한다”며 맞섰던 볼커는, 2019년 12월 8일 92세로 영면했다.
1927년 미국 뉴저지 주 케이프 메이에서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다양한 학생모임에서 활동했고, 정치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또래들과 선생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정책에 특화한 프린스턴대학교 우드로 윌슨 스쿨(Woodrow Wilson School)을 최우등으로 마쳤다. 그는 졸업논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실패한 점을 비판했다.

뉴욕 연준에서 리서치 보조로 일하다가 하버드대학원에 진학해 정치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런던정경대에서 수학했다. 1952년 뉴욕 연준에서 풀타임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하다 1957년에 체이스맨해튼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금융 담당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이후 1962년에 자신의 멘토인 로버트 루사에 의해 재무부 금융분석국장으로 등용되었고, 1963년 미국 재무부 통화 담당 차관보에 임명되었다. 1965년에 다시 체이스맨해튼은행 부행장 겸 기획 담당 임원으로 있다가 1969년에 닉슨 행정부의 부름을 받고 1974년까지 재무부 국제통화 담당 차관을 역임했다. 1971년 8월 15일 금태환 정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볼커는, 이 일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고 회고했다.

1975년 뉴욕 연준 총재를 거쳐 1979년 8월 카터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국 연준 의장에 취임했다. 볼커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나타났던 대대적인 인플레이션을 공격적인 통화긴축정책으로 퇴치하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1980년 3월 14.8%까지 올라갔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1983년에는 3% 밑으로 떨어졌다. 볼커 의장의 연준은 1979년 평균 11.2%이던 연방기금금리를 1981년 6월 20%까지 인상했다. 1981년 프라임 레이트(prime rate)가 21.5%까지 상승하는 과정에서 경기침체에 빠졌고(1980~1982년), 실업률이 10% 위로 올라갔다. 당시 연준에 항의하는 전례 없는 강력한 시위가 발발했다.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와 연준 본관 에클스빌딩을 봉쇄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볼커는 언제까지 인플레이션과 싸울 것이냐는 세간의 항의에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잡을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볼커의 뚝심은 성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이 떨어지면서 미국 경제성장의 여건을 조성한 것이다. 이후 1982년부터 통화긴축을 풀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경제성장세를 재개했다. 볼커는 1983년 레이건 행정부에서 연준 의장에 연임되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악화하는 미국의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에 대응하면서, 독일과 일본 등이 달러에 대해 자국 통화를 절상하도록 유도했다.

1987년 8월 연준 의장에서 퇴임한 뒤에도 볼커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멘토로 활약했다. 후임자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볼커처럼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때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여든이 넘은 볼커에게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직(2009년 2월-2011년 1월)을 맡겼다. 볼커는 은행들의 자기매매와 프라이빗 에쿼티 및 헤지펀드와의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의 강력한 금융규제를 발표했다. 이러한 볼커의 정책은 ‘볼커룰(Volcker Rule)’이라 불리며, 금융과잉을 막는 예방장치 역할을 해왔다.

“연준이 금리인하를 더 하지 않아 미국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면서 미국의 적은 중국이 아니라 연준”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노골적인 불평에, “중앙은행은 정치적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공정성을 지켜내야 한다”며 맞섰던 볼커는, 2019년 12월 8일 92세로 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