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었으나 때로는 부대낌이었고 또 때로는 기쁨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의도하지 않은 이유로 퇴사한 저는 공직에 들어와 평생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 옷은 경기도에서 주로 많이 입었고, 성남시와 의왕시 · 화성시에서도 입었으며, 국토해양부 · 국토교통부에서도 입었으니,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 그리고 중앙부처까지 행정기관의 위계별로 온갖 옷을 해 입은 셈입니다. 그리고 건축공학을 전공한 기술직 공무원으로 출발해 구청장 · 부시장 · 기획조정실장 · 행정부지사까지 일할 수 있었으니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가 일하던 환경은 여성이 많지 않아 눈에 잘 띄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금방 입에 오르내리니 오명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그만큼 물속의 발은 고단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주부다 보니, 깨어있는 시간에 더욱 예민해야 했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종종거리며 살았습니다.
다행히 제가 일한 부서의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 좋은 성과를 내고 성과평가를 통해 기관의 중요한 위치를 맡아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크건 작건 팀플레이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함께 열심히 뛴 것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공직을 그만두고는 경기도사회서비스원이라는 공공기관 초대 기관장을 맡아 기관을 새로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작고 열악한 신설 조직이지만 퇴임할 즈음엔 직원 수가 20배쯤 늘고 성적도 A를 맞을 만큼 단단해지자,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공직을 그만둘 때 주변 사람들이 정치를 권했습니다. 그동안 해온 일을 보며 누구보다 유리하다고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여러 번 고민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치는 제 옷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계획한 대로 대학강단에 서기를 결정하고 학교를 찾던 중 다행히 저의 모교인 고려대학교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그동안의 저의 경험을 전달하고 그들의 미래를 그리는데 옆에 있으려 합니다. 여자로서 공대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어 다양한 기관의 고위 관료까지 지낸 이력은 흔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겪은 저의 이야기를 처음 지면으로 꺼내며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부끄러운 것도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할 수 있었던 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본문 앞·뒤에 썼습니다. 아무쪼록 제 경험이 후배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발전시켜 나간다면 부끄러움은 이내 묻힐 것 같습니다.
나의 일이라고 평생을 자부하며 살았으나 미안한 일이 있습니다.공직자의 배우자인 남편의 희생, 바쁘다고 육아에 소홀히 한 엄마를 둔 민재·기웅이에게 참 미안하고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늘 곁에 있어 줬고 반듯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엄마 이렇게 사느라 바빴어. 이해해 줄래?”
책을 처음 만드는 제게 소소한 것까지 안내하고 가르쳐 준 홍승표 선배에게 감사드리며, 제 인생 이야기로 등장해 준 많은 분 들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예쁜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 심재인 선배와 조권희 님께 감사드립니다.행복한 순간 함께 해 주신 모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 014
· 서커스 천막에 숨어들다
· 순식간의 실종, 미아가 될 뻔하다
· 성호초등학교 치맛바람
· 고무대야 배 타고 학교 가는 날
· 오산천 썰매와 스케이트
· 오산 여중에 입학하다
· 엘리트 여상이 아닌 일반 고등학교 추첨
젊음과 낭만의 대학 생활 038
· 여자가 공대? 재수하라는 아버지
· 공대 신입생 여학생은 단 3명
· 내 인생의 짝을 만나다
· 대타 미팅, 밤 벚꽃놀이
· 여학생이 없는 건축공학과
세상으로 나오다 050
· 현대건설 입사, 귀찮은 여자 직원들
·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 갑작스런 건설회사 실직
· 임신한 교육생의 성적, 경기도와 인연을 만들다
2. 주택·도시 행정 이야기
경기도 이야기 064
· 입사 2년 3개월 만에 보직을 받다
· 여자라서 의심받는 보직
· 건축직의 한계에 직면하다
· 도시 계장 청원, 기술감사 계장으로
· 멀티플레이어 쉽지 않네!
· 기술서기관 승진, 건설본부로 가다
· 주택정책과장·실장, 도민을 위한 정책에 눈 뜨다
· 성남시 수정구청장, 사람이 너무 좋아
· 의왕시 부시장, 부지사의 숙제를 풀다
· 도시국장, 딸 덕에 장기교육 가다
· 주거대책본부장, 평택시와 인연 되다
· 경기도가 만든 최초의 신도시, 광교신도시
· 광교신도시의 진화, 기대와 우려
· 아파트 외관의 변화, 담뱃갑에서 탈출?
· 나는 어떤 우산이었을까?
· 미산골프장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번복 부결
· 두 번의 장기교육, 아이와 다시 시작하다
· 통근을 할까? 통학을 할까?
· 적극행정 제도 마련, 사전 컨설팅감사
· 경기도 기획조정실장, 화성시로 날아가다
· 왕 고참, 경기도의회 사무처장이 되다
· 황해(경기)경제자유구역청장, 평택항만의 가치에 놀라다
· 현덕지구 특혜논란에 대해 특별감사를 받다
3. 나의 인생, 나의 가족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삶 208
· 사우디에서 귀국한 남편, 결혼을 서두르다
· 딸의 인생에 함께해 준 어머니, 홍재연 여사님
· 결혼, 좋은 일이 밀려오다
· 아이 양육도 엄마의 몫
· 그림의 떡, 생애 최초 분양 주택
· 큰 아이 9살에 단칸방에서 탈출
· 광교산 자락 그림같은 전원주택에 살다
· 아버지는 제지회사 생산 전문가
· 아버지가 살아갈 집을 마련한 사위
· 옥수수를 먹는 쥐 다섯
· 해풍 맞으며 자란 화성 송산포도
· 2021년 평택시 명예시민이 되다
· 응원군이 되어준 정성종 선생님
· 예술가 사위
· 영원한 내 반쪽
·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사랑해!
· 화순씨의 세 번째 스무살
· 나의 모교 고려대로 돌아가다
돌이킬 수 없는 보육, 모든 것엔 때가 있다 260
· 8살 누나
· 새벽 수영하는 엄마
· 1년에 100원 오르는 용돈
· 1년에 2번 학교에 가기
· 딸아이 고등학교 입학, 정신이 들다
· 아빠와 딸, 대학교 지원 배치표를 만들다
· 서울대, 외형을 중시한 부모
· 마흔 네살, 엄마 품을 떠나다
· 늦는 아빠, 야간 스키 타는 가족
4. 먼저 걸은 길, 함께 가는 길
먼저 걸은 길, 함께 가는 길 279
· 먼저 걸은 길
· 함께 가는 길
· 국민에게 사랑받는 멋진 공무원
부록
언론에 비친 내 모습 293
Author
이화순
충청북도 보은군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2년이나 아이를 기다리던 가정에 맏이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자라 성품이 온화하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기에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이사 다니며 넉넉하지 않은 일반가정에서 보통사람의 생각과 생활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다. 어머니의 학구열로 공부에 몰두하여 1979년 고려대학교 공과대학에 특차(지금의 수시전형)로 입학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공과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며 건축공학과를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현대건설에 취직했으나 중동발 2차 오일쇼크로 감원 바람이 불던 1986년 4월 갑자기 실직했다.
실직한 기간에 결혼하고, 1987년 기술고시 시험(국가 공무원 5급 공채 기술직 채용시험)에 합격하였으며, 건축기좌(건축사무관)로 총무처, 내무부를 거쳐 1989년 경기도청에서 지방행정에 첫발을 떼었다. 경기도에서 주택 · 도시 · 지역개발 등 분야의 과장, 국장, 실장을 맡았으며, 국토해양부 · 국토교통부로 자리를 옮겨 기술안전정책관과 초대 건축정책관도 역임한 바 있어 중앙과 지방의 국토 도시개발 분야 행정을 꿰고 있는 전문가로 통했다. 종합행정 분야에서 성남시 수정구청장 · 의왕시 부시장 · 화성시 부시장뿐 아니라 경기도 행정2부지사를 맡아 숱한 현안을 해결했다. 여성이면서 온화한 성품으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을 잘했으며 중앙과 지방, 기술과 행정, 위계별 다양한 기관에서 많은 일을 하며 융합행정을 했기에 가능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경기도 최초의 여성 기술감사계장 · 구청장 · 부시장 · 기조실장 · 경제자유구역청장 · 행정부지사까지 최초 이력이 화려하다.
공무원을 명예 퇴임하고 경기도사회서비스원 초대대표로 자리를 옮겨 신설 공공기관을 제 궤도에 올려놓아 보건복지부로부터 설립 2년 차에 A등급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는 모교인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대학원 특임교수로 자리를 옮겨 ‘국토 및 도시정책 협동화 과정’의 후학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2년이나 아이를 기다리던 가정에 맏이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자라 성품이 온화하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기에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이사 다니며 넉넉하지 않은 일반가정에서 보통사람의 생각과 생활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다. 어머니의 학구열로 공부에 몰두하여 1979년 고려대학교 공과대학에 특차(지금의 수시전형)로 입학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공과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며 건축공학과를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현대건설에 취직했으나 중동발 2차 오일쇼크로 감원 바람이 불던 1986년 4월 갑자기 실직했다.
실직한 기간에 결혼하고, 1987년 기술고시 시험(국가 공무원 5급 공채 기술직 채용시험)에 합격하였으며, 건축기좌(건축사무관)로 총무처, 내무부를 거쳐 1989년 경기도청에서 지방행정에 첫발을 떼었다. 경기도에서 주택 · 도시 · 지역개발 등 분야의 과장, 국장, 실장을 맡았으며, 국토해양부 · 국토교통부로 자리를 옮겨 기술안전정책관과 초대 건축정책관도 역임한 바 있어 중앙과 지방의 국토 도시개발 분야 행정을 꿰고 있는 전문가로 통했다. 종합행정 분야에서 성남시 수정구청장 · 의왕시 부시장 · 화성시 부시장뿐 아니라 경기도 행정2부지사를 맡아 숱한 현안을 해결했다. 여성이면서 온화한 성품으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을 잘했으며 중앙과 지방, 기술과 행정, 위계별 다양한 기관에서 많은 일을 하며 융합행정을 했기에 가능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경기도 최초의 여성 기술감사계장 · 구청장 · 부시장 · 기조실장 · 경제자유구역청장 · 행정부지사까지 최초 이력이 화려하다.
공무원을 명예 퇴임하고 경기도사회서비스원 초대대표로 자리를 옮겨 신설 공공기관을 제 궤도에 올려놓아 보건복지부로부터 설립 2년 차에 A등급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는 모교인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대학원 특임교수로 자리를 옮겨 ‘국토 및 도시정책 협동화 과정’의 후학들에게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