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일어서려는데 이빨 자국 선명한 껌이 척 바짓가랑이에 들러붙은 걸 발견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먼저 하게 될까? “어르고 달래고 화내고 비벼 보아도 하! 그놈 끈질기”게 달라붙는다면? “퇴사통고 받고도 쫓겨나지 않으려는 직공” “녀석도 이미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은 놈” “어금니에 씹히고 찢긴 만신창이 된 몸” “단물 쪽 빨아먹고” 내팽개쳐진 그 껌을 어쩌지 못해 시인은 껌 대신 제 “영혼을 그 옆에 붙여두고” “나란 놈도 가끔은 누군가와 합쳐지고 싶은 날들이 있으니까요”하고 능청을 부린다.
그런데 마지막 상상력이 이 시의 재미를 더해준다. “빈 몸으로 덜렁거리며 집에 오는 길,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지요. 하! 그런데 말이죠. 내 머리통 저 위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여지껏 상영관을 빠져나가지 못한 영혼들이 다닥다닥 셀 수도 없이 붙어 있습디다.”(시 「심야영화관」)
유수경의 시들은 활달하다. 사물을 의인화 하는 능숙함에 사람살이의 고단함을 엮어 내는 솜씨가 그동안의 시적 연륜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달셋방 있음, 아가씨 환영, 과외 합니다”로 시작된 시 「전봇대의 말」은 “결핍된 것들만 들러붙어 짧은 치마를 들썩”이더니 “이대로 한 점, 발사 대기의 미사일이 되어/ 저 넓은 창공 위로 카운트다운 하는 순간을” 꿈꾸는 것으로 끝난다. 가을산 앞에서 시인은 “누르락붉으락 맘을 주체 못하던 나무들이 쥐고 있던 패를 내려 놓는다.”고 노래한다. “이 가을엔 나무들이 먼저 판을 접자고 한다. 지상 위 광기의 굿판을 뒤엎고, 저린 발 아래 부엽토 온기 같은 회복의 시간을 갖잔다. 빈 손가락이 하늘 가리키며 굴절 없이 투명한 새 판을 짜자고 한다.”(시 「접다」)
Contents
5 시인의 말
제1부
13 강제 이주
14 전봇대의 말
16 우물
18 백악기를 지나며
20 소만 무렵
22 다국적 신문사
24 조문
26 그녀, 수마트라
28 박쥐
30 접다
32 홍게를 말하다
34 이승의 개똥밭
36 석기시대
38 인동초 꽃 피다
40 2014, 씽크홀
42 덩굴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