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던 남명 조식. 영남학파의 지식인들은 점진적인 개혁을 꿈꾸며 사람의 입지를 준비한 퇴계 이황의 남인과,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주장하며 강렬한 비판 의식과 행동을 지닌 남명 조식의 북인으로 갈라지게 된다. 비록 두 지신인의 행보가 달라 파가 나뉘었으나 개혁을 위한 그 목표는 같았다.
과거에 급제하여 사대부의 길을 걷게 된 퇴계와는 달리 국가의 부름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재야 지식인으로 남았던 남명은 비록 정계에 진출하지는 않았으나 거침없는 비판 의식으로, 개혁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등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여느 사대부보다 더욱 강했다.
남명의 제자들 또한 평상시에는 재야 지식인으로 은둔하며 학문에 몰두하다가도 국가에 환란이 일어나면 직접 의병을 일으키거나 가담하여 머리로만 익히는 문(文)이 아닌 행동하는 문을 익혔다는 것을 보아도 평소 남명의 가르침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