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이래, 감시사회의 가능성은 지식인들이 미래를 상상할 때 언제나 고려하는 상수常數가 되었다. 어디서 무얼 하든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 ‘빅브라더’의 존재는 정보사회의 전개와 함께 더욱더 개연성 있는 서사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카카오톡 사찰’은 그러한 서사의 최신 버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상에서 출현한 최초의 빅브라더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21세기의 빅브라더 치고 너무 투박한 모습 아닌가? 카톡 사찰의 주체는 어설프고 원시적인 20세기형 빅브라더에 가깝다. 우리의 눈이 이 어설픈 권력에 향해 있는 사이, 그보다 세련되고 은밀한 눈이 일망一望 감시체제를 착실히 쌓아나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빅데이터 기술로 정교해진 정보자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정보자본주의는 지식과 인지가 새로운 부의 원천이자 중심이 되는 경제구조를 뜻한다. 지식과 감정을 포함해 인간의 인지 능력과 결과가 자본화하면서 ‘인간’의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다. 시시각각 온갖 정보를 송수신하는 이 시대의 인간은 체제의 운영체계 안에서 탁월하게 통제 가능한 자원으로 전락했다. 이 책은 정보자본주의의 탈인간적 변이 과정을 비판하고 인지적, 능동적, 창조적, 미적, 윤리적 능력을 생생하게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과 기획을 구상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공통의 자율을 추구할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특히 이 책은 정보통신 기술뿐만 아니라 건축, 의료, 음악, 패션, 사진, 기억과 죽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변화상을 전방위로 분석한다. 기존의 미디어 담론은 기업의 마케팅 언어를 변주하는 수준에 그칠 뿐, 변화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정보자본주의 사회의 문화 격변에 대응해 이 시대가 어떤 질문을 준비해야 하는지 명확히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감시체제와는 사뭇 다른 ‘서버server에 의한 감시’의 가공할 힘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양산될 ‘호모 익스펙트롤’, 즉 예측 가능한 인간이라는 핍진한 인간형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인간 실존의 기본 축인 시공간에 대해서까지 뻗어나간다. 이러한 촘촘한 성찰 아래 리듬과 소리,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대안적 상상력의 공간을 마련한다. 저자는 이처럼 사유의 지평을 확장해가면서, 철학과 사회학은 물론 신경생리학, 건축공학, 에스에프를 넘나드는 ‘인문과학’적 사유의 진경을 펼쳐 보인다.
Contents
프롤로그- 양계장의 바깥, 디지털의 민낯
‘빅데이터’라는 유령|예측 가능한 인간|통제사회와 압력솥 폭탄|시간과 자본|양계장의 추억
1장 호모 익스펙트롤: 빅데이터 시대의 인간형
빅데이터와 리비도|‘호모 익스펙트롤’의 사회|스페이스 멍키의 자리|예측 가능한 디스토피아
2장 시간의 파편을 사고파는 경제: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하여
신자유주의의 신비전神?展|소비자의 프랙털화|수량화된 자아|네트워크 자본을 원하십니까?
3장 제로 타임의 삶
신중한 뱀파이어|리듬분석|제로 타임|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4장 대안시간 체계를 사는 건 가능한가
슬로시티의 에스에프|보리수 길의 시간 공통체|비트와 세슘의 시간 체제|대안화폐 운동과 연동된 대안시간 체계
5장 창조경제의 만화경 1: DDP
위험도시|파상력破像力을 위한 장소|옥상 없는 비정형 건축
6장 창조경제의 만화경 2: BIM
사물인터넷 시대의 개선문|BIM의 알고리즘|노동의 종말|비트의 도시
7장 세상은 듣지 않는다: 인지자본주의와 음향적 신체
시간 포획 장치, 음악|음音과 자본의 공진화共進化|인지자본주의의 기생체|불가능한 음향적 신체
8장 미디어 격변기의 사운드스케이프
‘소리’의 싸개包|관계의 울림|시각 중심주의 너머의 카오스모스|미디어 격변기의 사회적 신체|방음벽을 넘어서
에필로그--- p. 인터넷 바깥의 인터넷
프로메테우스의 정치|이종異種의 인터넷을 향해|포틀래치|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