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나온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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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1/08/16
Pages/Weight/Size 152*225*35mm
ISBN 9791170482727
Categories 에세이
Description
한국 간호사 독일 진출 최초 개척자, 한국소아마비협회 창설 초대회장, 한국 심장 기형 아동 무료수술 운동 창시자, 그리고 동백림사건의 최대 피해자 이수길 박사의 삶을 담다.
Contents
유별나게 출세한 북청 물장수의 후손 | 세 살 때부터 소아마비(왼쪽 다리 마비)를 시작으로 병마에 시달인 유년기 | 친일파로 몰린 아버지 | 한국전쟁과 빨갱이 의사로 총살당할 뻔했던 순간 | 심한 설사병 때문에 구원된 생명 | LST화물선(Lane Victory)을 타고 간 부산 피난길 | 의사국가시험 자격시험을 거쳐 제5회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하여 한국 의사 면허증 제2816호를 취득 | 서울대학병원 외과에서 연수를 시작 | 서울대학병원 소아과 의국에서의 생활 (출판과 언론 활동) | 서울 심장부 명동에서 개업(조직폭력배들의 주치의) | 청운의 뜻을 안고 독일 유학 | 명문 Munster의과대학 입학 | 동무, 왜 변소에는 김일성 동지의 초상화가 없습니까? | 최초의 동양인으로 Frankfurt대학 정형외과 병원 조교로 임용 | 일본 도호쿠(東北)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 받아 | Mainz대학 소아과 병원 재임명 공무원으로 발령 | 대구 출신 신부와 올린 초고속 결혼식 | 운석(雲石) 장면(張勉) 박사와의 인연 | Mainz대학병원에서 두 번째 방사선과 전문의 과정 밟아 | 사단법인 한국 소아마비 협회 창설 민족을 위해, 약자를 위해(전 한국 소아마비 아동 특수보육 협회) | 박 대통령은 정립회관의 현판 글씨를 직접 썼다 | Mainz시에 사단법인 한독협회(韓獨協會) 창설 | 한국에서 최초로 심장 기형아동 돕기 운동 시작(한·독 간에 유일하게 이루어진 인술작전, 보사부 장관의 치하 서신) | 한독협회 사업을 방해하는 한국대사관과 독한협회(12개 주 가운데 유일하게 지회를 마인츠에 결선) | 한국 중견학자들의 서독 유학 주선과 장학금 지급 | 양주 고아원, 입양아 돕기 사업 | 엑스선사의 독일 취업 알선 | Frankfurt시 2004년 올림픽 유치 운동 | Muchen 올림픽에 김종필 총리가 초청될 뻔 | 대한항공 추락사건에 분통 터트린 Mainz 인근 교포들 (방송국에 호소 서한 발송) | 제1회 KBS 해외동포상 사회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 | 중단한 철학 공부 다시 하고 싶어 | Gutenberg 다음으로 유명한 Fuchs 시장의 자서전 제33장에 나를 소개함으로 Mainz시 역사에 기록됨 | 정부가 추진하는 의약분업을 측면에서 지원 | 한국 태권도를 최초로 독일에 보급하는 데 협조 | 제2의 고향 Mainz시내에 소아과 병원 개원 | 한국 간호사 서독 진출 | 한국 간호사 독일진출의 물꼬를 트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주장은 거짓말) | 한국 정부와는 유사한 협정을 체결한 적이 없었다 | 한국 간호사 독일 취업 이전에는 민간 차원의 간호 학생들이 유학 옴 | 한국 간호사들의 독일 취업을 주선하게 된 동기 | 1차 파독 간호사 (1966년 1월 31일 독일 도착) |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의 재회 (김 부장의 역할이 큰 도움이 됨) | 박정희 대통령과 45분간의 독대 | 독일병원에 취업한 간호사들, 독일 간호사와 동등한 대우 받음 | 2차 간호사 파독부터는 해외개공사에서 전담 (주선비 요구 강력 저지로 마찰) | 3차 간호사 파독(66년 6월 28일 독일 도착) | 난산(難産)의 4차 간호사 파독: 1967년 2월 3일 독일 도착(Frankfurt 시에서 한국 간호사를 초청하고도 취업 거절) | 간호사들의 독일생활 적응 | 서독 최대 공연장 ‘백년회관’에서 1967년 4월 14일에 훽스트 제약회사로부터 4만 마르크 경비를 들여 ‘한국의 밤’ 행사를 2천여 명을 초대하여 거행하였다 (본인과 친분이 있는 김신권 한독약품 회장의 후원이 큰 역할을 하였다.) | 527명의 간호사를 취업시킨 대가로 겪은 피눈물 나는 수난과 역경 | 간호사를 취업시킨 후 다음에 열거하는 5가지의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했다 | I.L.I 어학학원(서울 종로)에서 간호요원을 파독시킴(독어 강사 귄터 슘버(Gunter Shumber)가 취업을 주선함.) | 이종수 박사(한국기독교 난민구제회)가 시작한 간호요원들의 취업 (1980년 중반부터 Bonn대학로부터 의료활동을 박탈 당한 백수 의사) | 난민구제회의 인력수출 사기행각 사건으로 한국지부장 구속 (동아일보에 나의 업무와는 별개라는 해명광고 게재) | 파란만장했던 간호사 파독의 주역에서 물러나 다시 Mainz대학병원으로 | 한국 종교계와 독일 종교계에서 한국 간호사 파독 중지운동 전개 | 3년 계약을 마치고 귀국하는 간호사 | 독일 병원협회가 주관한 한국 간호요원들의 교체 취업 | 한국 간호사 재취업, 병원노동조합(근로자 이사회)의 반대로 좌절 (1980년 Frankfurt대학병원 30명의 백의 천사들) | 한국 간호보조사들의 서독 취업 | 5년 이상 근무한 간호요원들 독일 영주권 취득 | 한국 간호요원과 Philippin 간호요원들의 파독 경쟁 | 간호사 파독 40주년 기념특집 | 파독 간호사 40주년 | 분단의 비극, 동백림사건 | 동백림사건의 시작은 이기향 조선일보기자의 실종 사건 때문이다 | 박정희 만나 자수한 임석진 교수 | 윤이상 부인이 노무현 대통령을 접견하고 기자회견을 한 내용 중 | 동백림사건에 휘말려 모진 고문을 당해 죽을 뻔 | 수년 동안 친하게 지낸 임석진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수한 동기 | 중앙정보부 국제법 어기며 유럽에서 한인들 강제 연행 | 서독에서 납치된 17명 때문에 독일 여론 악화 | 서독 언론과 서독 정부의 강경조치(날짜 순 정리) | Mainz 자택에서 강제 연행되어 한국에 끌려가는 처량한 신세 | 동백림 거점 북한 대남 공작단 사건 발표 | 한국 역사상 5심까지 오른 전무후무한 과대포장 정치재판 | 납치된 지 한 달 만에 서독으로 귀환 | 서독에 귀환한 후 서독 정부와 언론의 반응(날짜순 정리) | 독일과 프랑스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는 유신독재정권 | 독일 특사와의 교섭 결과 및 현안 타결(비밀합의 외교문서 공개) | 동백림사건을 비누거품으로 만든 은인은 김종대의 친구 Raske 박사 | 나를 간첩 두목으로 조작한 장본인은 이ㅇ택 대공수사 과장 | 한국 정보부 첩자로 누명 받아 서독에서 추방 위기 | 홍종철 파독 광부 1진이며, 광산 통역과 대우 통역을 역임한 서예가가 2012년 교포신문에 발표한 기사를 소개한다 | 영국 유학생들이 동백림 북한대사관을 왕래한 사건 세칭 ‘소(小) 동백림사건’ (김규남 현역 국회의원과 박로수 박사는 왜 동백림을 방문한 죄로 죽어야 합니까?) | 김대중을 납치하여 없애 버리려 고민하고, 김형욱을 암살한 유신정권
Author
이수길
소아마비로 시작한 금생의 질곡(桎梏)을 견뎌 내게 한 버팀목이었으리. 소아마비 장애인, 탈북민, 검정 의사, 문교부 시행 해외 유학 자격고시를 거쳐 독일 유학, 한국 의사면허증(2816호), 독일의사면허증(1971), 의학박사(일본 동북대학), 명예 철학박사(단국대학), 임상교수(중앙대학), 석좌교수(대구대학), 독일 소아청소년 전문의, 독일 영상의학과 전문의, 마인츠시 최고 소아과 10명 중 7번째로 선정되었다.

동백림사건의 최대 피해자로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수길 박사, 옛날부터 최고의 출세와 행운을 두고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한다. 한국 간호사 독일 취업 개척자, 한국소아마비협회 창설(초대회장), 한국 최대 재활원 정립회관 건립, 한국 심장병 아동 무료수술 운동 창시자, 한국 중견 학자(8개 대학 강사, 조교수, 부교수)들에게 장학금 지급, 동백림사건 최대 피해자….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한국 국민훈장, 제1회 KBS 해외동포상 사회봉사 부문상 수상, 독일 공로 십자 훈장, 독일 최고사회공로상등을 수상하였다.
소아마비로 시작한 금생의 질곡(桎梏)을 견뎌 내게 한 버팀목이었으리. 소아마비 장애인, 탈북민, 검정 의사, 문교부 시행 해외 유학 자격고시를 거쳐 독일 유학, 한국 의사면허증(2816호), 독일의사면허증(1971), 의학박사(일본 동북대학), 명예 철학박사(단국대학), 임상교수(중앙대학), 석좌교수(대구대학), 독일 소아청소년 전문의, 독일 영상의학과 전문의, 마인츠시 최고 소아과 10명 중 7번째로 선정되었다.

동백림사건의 최대 피해자로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수길 박사, 옛날부터 최고의 출세와 행운을 두고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한다. 한국 간호사 독일 취업 개척자, 한국소아마비협회 창설(초대회장), 한국 최대 재활원 정립회관 건립, 한국 심장병 아동 무료수술 운동 창시자, 한국 중견 학자(8개 대학 강사, 조교수, 부교수)들에게 장학금 지급, 동백림사건 최대 피해자….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한국 국민훈장, 제1회 KBS 해외동포상 사회봉사 부문상 수상, 독일 공로 십자 훈장, 독일 최고사회공로상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