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논어論語』는 세계 3대 성인聖人의 한 분으로 받들어지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관한 언행록이다. 공자는 유교의 창시자이고, 『논어』는 유교 경전 중에서도 공자의 발자취와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네 삶의 방식을 가장 보편적이면서 진실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고전이다. 그러므로 『논어』는 전통사회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날로 개인주의가 만연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고전인 것이다.
Contents
들어가는 글
제1장 난세를 바로잡기 위해 인仁의 기치를 펼치다
01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02 효孝와 제悌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
03 도道는 충忠과 서恕일 따름이다
04 다섯 가지를 천하에 실천할 수 있으면 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05 강하고 굳세고 소박하고 말이 어눌하여도 신중한 자는 인에 가깝다
06 자신을 이기고 다시 예禮로 나아가는 것이 인仁이라고 한다
07 자신의 몸을 바쳐 인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제2장 백행의 근본 - 효도의 길
01 부모는 오직 자식의 질병을 걱정하신다
02 얼굴빛을 온화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03 부모의 나이는 알지 않을 수 없다
04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바꾸지 않아야만 효라 할 수 있다
05 어버이가 계시거든 멀리 나가 노닐지 말라
06 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07 부모에게 허물이 있으면 즐거운 안색으로 부드럽게 간諫해야 한다
08 3년 상은 온 천하의 공통되는 상례이다
09 상을 당했을 때 신중히 행하고 먼 조상들을 정성껏 제사 지내면
백성들의 덕성이 한결 돈후해질 것이다
제3장 배움의 즐거움과 방법
01 배우고 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02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03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보다 못 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 하다
04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05 배우고 생각지 않으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하다
06 옛 것을 잘 익혀 새로운 것을 알면 이로써 스승이 될 수 있다
07 날마다 모르고 있는 바를 알고, 달마다 능한 바를 잊지 않는다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08 꾸준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무당이나 의원도 될 수 없다
09 벼슬을 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고서 여가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
10 널리 배우고, 독실하게 뜻을 세우며, 절실한 것을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해 나간다면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
11 농사를 지어도 그중에 굶주림이 있는 법이요,
학문을 하여도 먹을 녹이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제4장 벗을 사귀는 법
01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02 유익한 세 가지 유형의 벗이 있고 해로운 세 가지 유형의 벗이 있다
03 공손하여 예의가 있으면 사해 안이 모두 형제일 것이다
04 어진 이를 존중하고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며, 선한 이를 아름답게 칭찬하고
능력이 모자란 자는 불쌍히 여겨 돌봐주라
05 안평중은 남과 잘 사귀었다. 오래 사귀면서도 상대방을 존경했다
06 군자는 학문을 통해서 벗을 사귀고, 벗을 통해서 자신의 인덕을 돕는다
07 어느 나라에 살든 그 나라의 대부大夫 중에 현명한 사람을 섬기며,
그 나라의 선비 중에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아야 한다
08 주공과 같은 뛰어난 재능이라도 만약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
09 충성과 신의를 위주로 하며, 나보다 못한 사람을 사귀지 말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제5장 지혜로운 처신과 처세의 길
01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도 않고, 또 말을 잃지도 않는다
02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연유를 보고, 그가 만족해하는 바를 관찰한다면,
사람이 어찌 자기를 숨길 수 있겠는가
03 정직으로써 원수를 갚으며 덕으로써 덕을 갚는다
04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나가고 도가 없으면 들어가 숨어라
05 사람이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 근심거리가 생긴다
06 자신을 책망하는데 엄격하고 남을 책망하는데 관대하면
다른 사람의 원망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07 지혜로운 사람은 의혹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걱정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08 여러 사람들이 미워해도 반드시 살펴봐야 하고,
여러 사람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09 자기가 모실 귀신이 아닌데도 그를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
10 가난해도 도를 즐기며, 부유해도 예를 좋아한다
제6장 바른 정치의 길
01 천승의 큰 나라를 다스리는 때에는 모든 일을 경건하게 하고 믿음을 주고,
쓰임을 절도 있게 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때를 생각하여 백성을 부리는 것이다
02 덕으로써 정치하는 것을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뭇별들이 그것 주변으로 향해 떠받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03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려야 하고,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한다
04 백성이 정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
05 작은 허물을 용서해 주며, 어진 이와 유능한 이를 등용해야 한다
06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겠다
07 그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해지고,
그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행해지지 않는다
08 가까운 사람들이 기뻐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찾아오게 만든다
09 빨리 하고자 하면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탐내면
큰 사업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10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단속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느껴서 더욱 선해질 것이다
11 다섯 가지 미덕을 높이고, 네 가지 악덕을 물리치면 정사에 종사할 수 있다
제7장 진정한 리더, 군자가 되는 길
01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일이 있다
02 군자는 화합하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반면에,
소인은 부화뇌동만 할 뿐 화합하지는 못한다
03 군자는 남과 다투는 일이 없다. 반드시 다툴 일이 있다면 활 쏘는 경쟁을 한다
04 군자는 아홉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05 군자가 벼슬길에 나서는 것은 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다
06 군자는 그릇과 같지 않다
07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점을 도와서 이루게 하고 남의 악한 점을 못 하게 하나,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08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
09 군자의 허물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 허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다 보게 된다.
허물을 고치면 사람들이 다 우러러본다
10 군자가 학문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한다면 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11 문체와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
12 군자는 믿음을 얻은 다음에야 백성을 부려야 한다
13 명命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모르면 세상에 나설 수 없으며,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
부 록 《공자성적도孔子聖迹圖》로 살펴보는 공자의 일대기
공자 연보
Author
공자,김영진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아버지 숙양홀(叔梁紇)과 어머니 안씨(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수리가 움푹 들어가 둘레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이름을 구(丘: 언 덕 구)라고 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季氏) 가문의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48살 때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중도(中都)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司空) 벼슬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497년 이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기원전 479년 73살 때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언덕)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