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에게는 울거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 (…) 그렇지만 남자들은, 이성을 잃고 날뛰게 되지.” 20세기 여성 작가들의 텍스트를 ‘수치심’이라는 주제로 분석한 열다섯 편의 글을 엮은 『여성의 수치심: 젠더화된 수치심의 문법들』은 살만 루슈디 소설 『수치』의 의미심장한 대목으로 시작된다. 사회적인 감정인 수치심은, 이 인용이 첨예하게 포착하듯 다분히 젠더화되어 있다. 부당한 수치심에 맞서기 위해 인생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치심을 느꼈다는 이유로 타인을 죽이는 사람도 있는 것이 수치심 사회의 동학이고 우리는 이 사회에서 그 동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수없이 목격했다. 『여성의 수치심』은 수치심이 한 여자의 내면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부터 그 여자가 수치심과 관계 맺는 과정, 그 관계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청산하거나 치환하거나 완성해내는 궤적을 각기 다른 작품과 주제를 통해 탐구한다.
‘여성적 수치심female shame’을 꿰는 분석 틀은 크게 세 가지다. 신체, 가족, 그리고 사회. 이 책은 여성이라는 젠더 자체, 여성 신체와 여성 섹슈얼리티, 동성애 수치심,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종차별, 이성애 관계와 제도에 매인 여성 예술가, 소녀들의 세계와 집단 괴롭힘, 여성의 수난과 불행, 국가에 의한 여성 신체 착취, 여성성을 모욕하는 민족과 종교, 힌두 및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에게 자행되는 잔혹한 폭력과 멸시, 소외감과 수치심의 관계 등 광범위한 이슈를 아우르며 여성적 수치심의 장場인 신체와 가족, 사회를 재사유한다. 이 사유에는 수치심학의 계보에서부터 문학, 정동 이론, 페미니즘 및 퀴어 이론, 장애학, 포스트 식민주의, 문화 이론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논의가 동원된다. 수치라는 이데올로기, 젠더화된 수치심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 책의 목표는 그것이 여성의 삶에 행사하는 고통스러운 영향력에 대항하는 것이다.
Contents
옮긴이의 말 수치심과 젠더 _손희정
서문
1부 수치스러운 몸
1장 타자인 여성: 제노포비아와 수치심 _조슬린 에이건
2장 강간, 트라우마, 그리고 수치심: 침묵의 벽을 깨고 생존하기 _니콜 페이야드
3장 피로 물든 수치심: 부끄러움을 모르는 포스트모던 동화들 _수젯 A. 헹케
4장 “부끄러워서 더 이상 쓸 수 없다”: 수치심의 근원과 대면하는 글쓰기 _내털리 에드워즈
5장 장애 자긍심과 수치심의 상호작용 _일라이자 챈들러
2부 가족의 수치
6장 고통받는 자들은 인간이 아니어야 한다: 식민 수치심과 비인간화의 궤적 _에리카 L. 존슨
7장 선조와 이방인들: 과학소설에서 퀴어적 변화와 정동적 소외 _프랜 미셸
8장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 _시네이드 맥더모트
9장 “얽매여 재갈 물린 삶”: 수치심, 그리고 여성 예술가의 탄생 _퍼트리샤 모런
10장 소녀들의 세계와 집단 괴롭힘 _로라 마르토치
11장 진 리스와 시몬 베유의 불행 _타마르 헬러
3부 수치심 사회
12장 여성의 신체로 국가적 수치에 맞서는 중국: 찬미인가, 모욕인가? _페일링 자오
13장 수치를 떠안은 몸: 계급사회 인도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모욕 _남라타 미트라
14장 ‘라자’-수치심의 사회문화적 각본 _캐런 린도
15장 소속되지 못한 자의 수치심 _애나 로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