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옛이야기에 나타난 가족 관계와 역할 정체성

인물의 ‘행위’와 인물 간의 ‘관계’는 옛이야기를 분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구술전통담화에서 인물의 행위와 그로 인한 결말은 이야기 향유자들이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동의한 것들이다. 결과적으로 인물이 수행한 행동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인물이 맺는 관계?조력자, 반대자, 그 외 주변 인물?는 인물이 처한 세계 그 자체를 말한다. 곧 옛이야기에서 인물의 관계는 인물을 움직이게 하는 ‘배경’이자 그가 사는 세계의 ‘성격’을 뜻한다. 인물이 특정 인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태도는 어떠한지, 무엇을 주고받는지(물질적, 정서적) 등은 인물이 지향하는 세계의 성격을 드러낸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가족 관계를 소재로 하는 옛이야기들을 찾아보았다. 이들 이야기에서 부부(남편과 아내), 사위, 며느리, 부모, 자녀가 주로 누구와 무엇 때문에 갈등하는지, 누구와 협력하는지, 서로 무엇을 주고받는지, 주고받는 관계에서 힘의 방향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힘의 작용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무엇을 뜻하는지 등을 살피려고 하였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옛이야기가 몇 가지 플롯을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인물의 행위와 관계에서 나타나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징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들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문화적 개연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 연구의 대상으로서 가치가 있다.

1장에서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분석함으로써 한국의 가족 문화에서 부부 관계가 어떻게 관념되는지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1장의 논의에 이어 남성이 혼인을 통해 얻게 되는 지위와 자기 성장의 의미를 다루었다. 3장에서는 시집에서 다양한 역할들을 요구받는 며느리 설화를 다루었다. 4장과 5장에서는 효행 설화와 현대의 육아 담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부모-자녀 관계에서 드러나는 문제와 지향점을 다루었다. 1, 2, 3장에 비하여 이야기 텍스트에 대한 분석보다는 인류학과 사회학의 관점을 활용하여 부모와 자녀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우선 4장에서는 효행 설화에 나타나는 ‘자녀희생 모티프’(부모를 위해 자신의 자녀를 죽이는 것)에 집중하여 그것이 주는 심리적 불편과 지극한 효행의 간극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찾아보았다. 한편, 5장에서는 부모-자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 행위로서 감정 표현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