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소년 가장이 되어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 셋의 부양을 맡았다. 덕수상고를 다니며 졸업도 하기 전에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고, 야간대학을 다니며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으로 주경야독한 끝에 25살이 되던 1982년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해 ‘고졸 신화’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에 이어 국비 장학금과 미국 정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시간 대학(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시작한 34년 공직생활 내내 ‘사회 변화에 대한 기여’를 신조로 우리 경제와 사회문제 해결에 소신을 다해왔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우리 정부 최초의 국가 장기 발전전략인 ‘비전 2030’을 수립했고, 세계은행(IBRD) 프로젝트 매니저를 지냈다.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였고, 국가재정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지냈다. 이후 기획재정부 차관을 거쳐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국정 전반을 조율하기도 했다. 이 시절, 공직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 기자 세계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관료’로 통했다.
이후 아주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파란학기’, ‘After You 프로그램’ 등 대학 혁신과 계층 이동을 촉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해 대학가는 물론 사회에 뜻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브라운백미팅, 총장북클럽 등을 정기적으로 하며 청년들과의 소통에 힘썼다.
2017년 여름부터 2018년 겨울까지 문재인 정부 초기 내각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일했다. 재임 중 3%대 성장률을 회복했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혁신성장의 전도사로 벤처 붐을 일으키는 초석을 놓았다. 대외적으로도 한·중 통화스왑을 연장시키고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막는 등 경제안정에 기여했다.
경제 수장으로서 우리 경제의 틀과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했지만 많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조세와 부동산 정책 등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강하게 소신을 주장했지만 결국 관철되지 못하는 쓰라린 경험도 했다. 결국 ‘1년 6개월 하루’의 재임 마지막 날까지 ‘전장에서 죽는 군인’의 심정으로 예산안 통과와 G20 정상회의를 마무리하고 만 34년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이후 모든 제의를 사양하고 2년 넘게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한편, 비영리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만들어 혁신, 사회적 이동, 소통의 가치를 실천에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삶의 현장을 볼수록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생각이 커졌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왜 기회가 없을까? 왜 주어진 기회조차 불공평할까? ‘기회의 복합위기’ 시대에 답을 찾고자 책 『대한민국 금기 깨기』를 쓰게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나면 소박함과 겸손함에 놀란다. 그를 다시 만나면 해박함과 열정에 반한다. 그와 같이 일하면 치밀함과 추진력에 기가 질린다. 그러나 그를 깊이 알면 그 진정성과 순수함에 저절로 팬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오랜 공직의 경험과 공직을 그만둔 뒤 했던 성찰과 고민, 그리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정리했다.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를 풀 해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실천에 옮길 수 있는가? 책 『대한민국 금기 깨기』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다.
주요 저서로 『있는 자리 흩트리기』, 『대한민국 금기 깨기』가 있다.
11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소년 가장이 되어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 셋의 부양을 맡았다. 덕수상고를 다니며 졸업도 하기 전에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고, 야간대학을 다니며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으로 주경야독한 끝에 25살이 되던 1982년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해 ‘고졸 신화’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에 이어 국비 장학금과 미국 정부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시간 대학(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정책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시작한 34년 공직생활 내내 ‘사회 변화에 대한 기여’를 신조로 우리 경제와 사회문제 해결에 소신을 다해왔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우리 정부 최초의 국가 장기 발전전략인 ‘비전 2030’을 수립했고, 세계은행(IBRD) 프로젝트 매니저를 지냈다.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였고, 국가재정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지냈다. 이후 기획재정부 차관을 거쳐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국정 전반을 조율하기도 했다. 이 시절, 공직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배’, 기자 세계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관료’로 통했다.
이후 아주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파란학기’, ‘After You 프로그램’ 등 대학 혁신과 계층 이동을 촉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해 대학가는 물론 사회에 뜻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브라운백미팅, 총장북클럽 등을 정기적으로 하며 청년들과의 소통에 힘썼다.
2017년 여름부터 2018년 겨울까지 문재인 정부 초기 내각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일했다. 재임 중 3%대 성장률을 회복했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혁신성장의 전도사로 벤처 붐을 일으키는 초석을 놓았다. 대외적으로도 한·중 통화스왑을 연장시키고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막는 등 경제안정에 기여했다.
경제 수장으로서 우리 경제의 틀과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했지만 많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조세와 부동산 정책 등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강하게 소신을 주장했지만 결국 관철되지 못하는 쓰라린 경험도 했다. 결국 ‘1년 6개월 하루’의 재임 마지막 날까지 ‘전장에서 죽는 군인’의 심정으로 예산안 통과와 G20 정상회의를 마무리하고 만 34년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이후 모든 제의를 사양하고 2년 넘게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한편, 비영리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만들어 혁신, 사회적 이동, 소통의 가치를 실천에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삶의 현장을 볼수록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생각이 커졌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왜 기회가 없을까? 왜 주어진 기회조차 불공평할까? ‘기회의 복합위기’ 시대에 답을 찾고자 책 『대한민국 금기 깨기』를 쓰게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나면 소박함과 겸손함에 놀란다. 그를 다시 만나면 해박함과 열정에 반한다. 그와 같이 일하면 치밀함과 추진력에 기가 질린다. 그러나 그를 깊이 알면 그 진정성과 순수함에 저절로 팬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오랜 공직의 경험과 공직을 그만둔 뒤 했던 성찰과 고민, 그리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정리했다.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를 풀 해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실천에 옮길 수 있는가? 책 『대한민국 금기 깨기』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다.
주요 저서로 『있는 자리 흩트리기』, 『대한민국 금기 깨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