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말꽃모음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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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635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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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1/12/30
Pages/Weight/Size 210*297*20mm
ISBN 9791163500506
Categories 인문 > 인문/교양
Description
소설가 “설흔”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연암 박지원”

이 책은 소설가 설흔의 눈으로, 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글의 정수를 엮어 그 향기를 피워 올린 글모음이다. 허나 박지원의 글을 서두부터 결말까지 전체를 모두 실어놓은 것이 아닌, 꽃처럼 돋보이는 단락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해서 엮은, 말 그대로 ‘고갱이’만을 간추려 놓은 모음집이다. 엮은이는 시처럼, 편지처럼, 소설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작업했다고 한다.

설흔이 서두에 박지원을 잘 모른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과한 겸양의 말이다. 그는 박지원의 「우상전」을 재해석해 『시인의 진짜 친구』라는 글을 쓴 바 있고, 박지원의 글쓰기론을 소설로 풀어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콘텐츠를 생산할 정도로 누구보다도 ‘박지원’을 사랑하고 깊이 있게 연구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가 자신 안에 녹여내고도 차고 넘치는 ‘박지원’의 고갱이만을 모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설흔’이 한 조각 한 조각 이어붙인 박지원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역설’과 ‘해학’, ‘비판 정신’ 같은 키워드로 설명되는 기존의 ‘박지원’의 모습 그대로일까? 아니면 조각 조각의 합이 ‘박지원’이라는 전체를 새롭게 재구성해낼까? ‘설흔’이라는 프레임으로 다시 바라본 박지원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Author
박지원,설흔
호는 연암이며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다.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 운동의 선두 주자였으며 많은 문장을 후세에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출생하여 자랐으며,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박필균(朴弼均)이고, 아버지는 박사유(朴師愈)이며, 어머니는 함평 이씨이다. 아버지가 벼슬 없는 선비로 지냈기 때문에 할아버지 박필균이 양육하였다.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후로는 과거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박제가(朴齊家),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득공(柳得恭), 유금(柳琴) 등과 학문적으로 깊은 교유를 가졌다. 홍대용(洪大容), 이덕무(李德懋), 정철조(鄭喆祚) 등과 ‘이용후생에 대해 자주 토론하였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파벌 싸움의 여파까지 겹쳐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으로 은거하였다. 1780년(정조 4년) 친척인 박명원(朴明源)이 사신으로 북경에 가게 되자 수행원이 되어 6월부터 10월까지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때의 견문을 정리해 쓴 책이『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저서로는『열하일기(熱河日記)』, 작품으로는「허생전(許生傳)」,「민옹전(閔翁傳)」,「광문자전(廣文者傳)」,「양반전(兩班傳)」,「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봉산학자전(鳳山學者傳)」등이 있다.
호는 연암이며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다.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 운동의 선두 주자였으며 많은 문장을 후세에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출생하여 자랐으며,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박필균(朴弼均)이고, 아버지는 박사유(朴師愈)이며, 어머니는 함평 이씨이다. 아버지가 벼슬 없는 선비로 지냈기 때문에 할아버지 박필균이 양육하였다.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후로는 과거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박제가(朴齊家), 이서구(李書九), 서상수(徐常修), 유득공(柳得恭), 유금(柳琴) 등과 학문적으로 깊은 교유를 가졌다. 홍대용(洪大容), 이덕무(李德懋), 정철조(鄭喆祚) 등과 ‘이용후생에 대해 자주 토론하였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파벌 싸움의 여파까지 겹쳐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으로 은거하였다. 1780년(정조 4년) 친척인 박명원(朴明源)이 사신으로 북경에 가게 되자 수행원이 되어 6월부터 10월까지 북경과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때의 견문을 정리해 쓴 책이『열하일기(熱河日記)』이다. 저서로는『열하일기(熱河日記)』, 작품으로는「허생전(許生傳)」,「민옹전(閔翁傳)」,「광문자전(廣文者傳)」,「양반전(兩班傳)」,「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봉산학자전(鳳山學者傳)」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