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서 태어나 남원 용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 시절 선배의 권유로 공대 학회에 가입, 이념 서적을 탐독하면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봉천동 달동네를 직접 방문하거나 구로동과 청계천의 봉제공장을 찾아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현장을 목격한 것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계기가 되었다. 이용호 의원은 경향신문사에서 15년 동안 정치부 기자를 지낸 베테랑 저널리스트이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초기인 1998년, 그는 정치부 차장으로 재직 중이던 신문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공직사회에 뛰어들었다. 총리실 정책 및 공보 비서관 생활을 하게 된 6년 동안, 행정과 국정 전반에 관해 폭넓은 견식과 실무 감각을 두루 익힐 수 있었다. 이용호 의원은 방송사의 시사평론가로 활약할 때,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분석해 내는 촌철살인의 평설(評說)을 내놓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중견 건설사 겸 유통회사의 CEO 시절, 실물 경제의 허와 실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지니게 되면서 갖추게 된 균형 감각 덕분이었다. 국회 사무처 홍보기획관 시절에는 [국회보]의 편집인을 맡으면서, 미려한 문장과 운치 있는 글을 편편이 써 내어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목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유의 뚝심과 낙천성을 지닌 이용호 의원은 2016년 4월, 전북 남원 · 임실 · 순창을 지역구로 둔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더 나은 정치, 민생을 챙기는 일하는 국회의원이 되기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는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국회 남북관계개선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등을 두루 거치면서 원내 일꾼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8년 2월경 그는 ‘당 분열을 막지 못해’ 고민하던 중 국민의당을 탈당, 무소속 의원이 되었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늘 지역민과 함께한다는 각오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1960년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에서 태어나 남원 용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 시절 선배의 권유로 공대 학회에 가입, 이념 서적을 탐독하면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봉천동 달동네를 직접 방문하거나 구로동과 청계천의 봉제공장을 찾아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현장을 목격한 것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계기가 되었다. 이용호 의원은 경향신문사에서 15년 동안 정치부 기자를 지낸 베테랑 저널리스트이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초기인 1998년, 그는 정치부 차장으로 재직 중이던 신문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공직사회에 뛰어들었다. 총리실 정책 및 공보 비서관 생활을 하게 된 6년 동안, 행정과 국정 전반에 관해 폭넓은 견식과 실무 감각을 두루 익힐 수 있었다. 이용호 의원은 방송사의 시사평론가로 활약할 때,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분석해 내는 촌철살인의 평설(評說)을 내놓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중견 건설사 겸 유통회사의 CEO 시절, 실물 경제의 허와 실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지니게 되면서 갖추게 된 균형 감각 덕분이었다. 국회 사무처 홍보기획관 시절에는 [국회보]의 편집인을 맡으면서, 미려한 문장과 운치 있는 글을 편편이 써 내어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목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유의 뚝심과 낙천성을 지닌 이용호 의원은 2016년 4월, 전북 남원 · 임실 · 순창을 지역구로 둔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더 나은 정치, 민생을 챙기는 일하는 국회의원이 되기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는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국회 남북관계개선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등을 두루 거치면서 원내 일꾼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8년 2월경 그는 ‘당 분열을 막지 못해’ 고민하던 중 국민의당을 탈당, 무소속 의원이 되었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늘 지역민과 함께한다는 각오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