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담·관화담

$13.80
SKU
9791160870596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Mon 12/9 - Fri 12/13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Wed 12/4 - Fri 12/6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0/05/20
Pages/Weight/Size 128*188*20mm
ISBN 9791160870596
Categories 소설/시/희곡 > 비평/창작/이론
Description
일본 근대 문학의 거목, 대 로한이 이끄는
증폭된 감각으로 그려진 여운 깊은 환담 세계

고다 로한의 기담은 유혈이 낭자하거나 오감을 시큼하게 하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닌 벼루에 먹을 오래 갈아 느릿느릿 그려내는 담담한 수묵화 세계 속의 기이한 이야기이다. 밤바다 한가운데서 낚싯대를 발견하는 재야의 낚시객, 폭우가 쏟아지는 절벽 위 암자 속에 홀로 남겨진 신경쇠약 만학도, 전란과 권력의 폭풍 속에서 고독하게 마법을 수련하는 무사, 너무나 아름다운 세발솥과 그 모조품 사이를 헤매는 골동품상, 잡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낚싯대를 드리우는 추레한 소년. 이들의 이야기는 짙음과 옅음을 덜고 더해가며 아직까지 세계의 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원숙한 노년 작가인 로한이 든 붓을 통해 그 환담이 현대의 우리의 마음속에도 천천히 번져 온다.

중국 고전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문어체와 심원한 이상을 바라보는 대가의 고고한 작풍 너머에는 낚시를 즐기고 술을 좋아하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는 로한처럼 아련하고 따스한 시선이 녹아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히구치 이치요 등에게 큰 영향을 주고 후대 문인에게 대(大) 로한이라 불리는 그를 향해 아주 살짝 경계를 푼다면 깊은 어둠 속에서도 어떤 포근함이 느껴질 것이다.
Contents
역자의 말

환담(幻談)
관화담(觀?談)
골동품
마법 수행자
갈대 소리

작품 해설
작가 연보
Author
고다 로한,홍부일
본명은 고다 시게유키(幸田成行), 별호는 ‘집이 없는 달팽이’라는 뜻의 가규안(蝸牛庵)이다. 1867년 에도 막부 가신(家臣) 가문에서 태어난 로한은 어린 시절부터 형인 시게쓰네의 영향으로 시 짓기를 익히며 한문과 한시를 배웠다. 1883년 관립 전신수기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전신 기사로 홋카이도에 부임하지만 1887년 돌연 기사직을 사임, 쓰보우치 쇼요(坪_逍_)의 평론과 소설을 읽은 뒤 깊은 감명을 받아 스스로 로한(露伴)이란 필명을 짓고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1889년 22세 때 「이슬방울(露??)」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고 뒤이어 1889년 『로단단』과 단편소설 「풍류불」을 시작으로, 1891년 인간과 예술의 위대함과 영원성을 표현한 『오중탑』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며 오자키 고요와 함께 일본 문단의 고로시대(紅露時代)를 열었다. 문학 작품 외에도 「일국의 수도」, 「물의 도쿄」 등의 도시론과 「유선굴(遊仙窟)」, 「바쇼 하이쿠 연구」 등의 문학연구평론, 「바쇼 칠부집(芭蕉七部集)」 주해, 「난소사토미핫겐덴(南?里見八犬傳)」 평론 해석 등을 발표하며 오자키 고요(尾崎紅葬), 쓰보우치 쇼요, 모리 오가이(森?外) 등과 함께 고로쇼오(紅露逍?) 시대를 주도하고 이상주의 작가로서 이름을 떨친다.

1908년 교토제국대학 문과대 강사로 취임하나 같은 해 강사직을 사임하고 도쿄로 돌아와 중국 고전을 토대로 한 소설 「운명」을 발표, 큰 호평을 받는다. 그 뒤 중국 고전과 도가 철학에 몰두하여 동양 사상 연구서와 역사 고증 소설을 여럿 남겼다. 1937년 제1회 문화훈장을 수여하고 예술회 회원이 된 그는 1947년, 79세에 폐렴과 협심증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대한 작품을 남긴 메이지 시대 대표 작가다.

폭넓은 취미와 교양,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세련된 문장은 타의추종을 불허했으며, 수필가와 사상가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일구검』, 『풍류미진장』, 『운명』 등이 있으며, 특히『논어』를 새롭게 해설한 『열락』은 근대 유교문학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문학 작품 외에도 ‘일본 최고의 자기계발서’라고 일컫는 『노력론』을 집필했다.
본명은 고다 시게유키(幸田成行), 별호는 ‘집이 없는 달팽이’라는 뜻의 가규안(蝸牛庵)이다. 1867년 에도 막부 가신(家臣) 가문에서 태어난 로한은 어린 시절부터 형인 시게쓰네의 영향으로 시 짓기를 익히며 한문과 한시를 배웠다. 1883년 관립 전신수기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전신 기사로 홋카이도에 부임하지만 1887년 돌연 기사직을 사임, 쓰보우치 쇼요(坪_逍_)의 평론과 소설을 읽은 뒤 깊은 감명을 받아 스스로 로한(露伴)이란 필명을 짓고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1889년 22세 때 「이슬방울(露??)」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고 뒤이어 1889년 『로단단』과 단편소설 「풍류불」을 시작으로, 1891년 인간과 예술의 위대함과 영원성을 표현한 『오중탑』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며 오자키 고요와 함께 일본 문단의 고로시대(紅露時代)를 열었다. 문학 작품 외에도 「일국의 수도」, 「물의 도쿄」 등의 도시론과 「유선굴(遊仙窟)」, 「바쇼 하이쿠 연구」 등의 문학연구평론, 「바쇼 칠부집(芭蕉七部集)」 주해, 「난소사토미핫겐덴(南?里見八犬傳)」 평론 해석 등을 발표하며 오자키 고요(尾崎紅葬), 쓰보우치 쇼요, 모리 오가이(森?外) 등과 함께 고로쇼오(紅露逍?) 시대를 주도하고 이상주의 작가로서 이름을 떨친다.

1908년 교토제국대학 문과대 강사로 취임하나 같은 해 강사직을 사임하고 도쿄로 돌아와 중국 고전을 토대로 한 소설 「운명」을 발표, 큰 호평을 받는다. 그 뒤 중국 고전과 도가 철학에 몰두하여 동양 사상 연구서와 역사 고증 소설을 여럿 남겼다. 1937년 제1회 문화훈장을 수여하고 예술회 회원이 된 그는 1947년, 79세에 폐렴과 협심증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장르의 방대한 작품을 남긴 메이지 시대 대표 작가다.

폭넓은 취미와 교양,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세련된 문장은 타의추종을 불허했으며, 수필가와 사상가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일구검』, 『풍류미진장』, 『운명』 등이 있으며, 특히『논어』를 새롭게 해설한 『열락』은 근대 유교문학의 걸작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문학 작품 외에도 ‘일본 최고의 자기계발서’라고 일컫는 『노력론』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