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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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1/03/08
Pages/Weight/Size 150*224*20mm
ISBN 9791160371758
Categories 종교 > 기독교(개신교)
Description
아랍 출신의 시리아 (다마스쿠스 지역)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성 요한이 비잔틴제국의 황제 레오 3세의 아이콘 숭배를 금한 법령에 반박하여 쓴 하나님의 성상에 대한 세 편의 논문 묶음집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나 성경의 인물을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나타내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역사상에 종종 등장했다. 무엇보다 대중들의 교육열이 낮은 지역에서 그림과 조각과 아이콘은 글이나 문자보다 더 교육적으로 효과적이었다. 아이콘이 보여주는 즉각적인 시각적 효과가 읽고 이해하는 글보다 나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세의 십계명 제2계명이 보여주듯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우상도 만들지 말라는 구절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의 경계석과 부담이 되었다.

이 책에서 성 요한은 많은 초대교부들의 글을 인용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거룩한 이미지나 아이콘을 통해 드러낼 수 있으며 그것의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예시로 설명했다. 따라서 요한은,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나타내는 하나님 또는 성인들의 성상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지만, 공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Contents
첫 번째 변증 - 6
두 번째 변증 - 72
세 번째 변증 - 110

에필로그 “당대 최고의 신학자는 왜 레오 황제에 의해 손목이 잘렸을까-”_김재현 - 176
참고문헌 - 199
Author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전경미,김재현
기독교 역사에서 이렇게 중요한 주제와 논쟁의 한 가운데 자리했던 학자요 수도자가 바로 다마스쿠스의 요한이었다. 그의 이름이 보여주듯이, 요한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슬람 세력이 시리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635년에 다마스쿠스가 비교적 상처를 입지 않고 이슬람 세계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우호적인 가교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할아버지 만수르(Mansour ibn Sarjun)는 지역의 세금관리자로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존 만수르(Mansour ibn Sarjun) 역시 세습이 가능한 궁정의 세금관리자로 살면서, 아들 존에게 비교적 다양한 양질의 교육을 제공했다.
요한의 집안이 아랍 출신의 시리아 기독교 가족이었다는 것에 대하여는 대부분 학자들이 동의한다. 요한은 시칠리아의 고아 출신인 코스마스(Cosmas)와 어린 시절부터 친형제같이 교육을 받았다. 요한은 그의 나이 만 50세 어간이던 725년에 아버지의 직을 이어 일하던 궁정에서 사직하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인근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었다. 베들레헴에서 남동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마르사바(Mar Saba) 수도원에 안착했고, 이후 735년에 사제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법과 신학과 철학에 관심을 갖고 수도생활과 작품활동에 전념했고, 교회 예전에 쓰이는 찬송가 작곡가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쓴 찬송가는 지금도 부활절에 비잔틴기독교뿐만 아니라 루터교회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렇게 중요한 주제와 논쟁의 한 가운데 자리했던 학자요 수도자가 바로 다마스쿠스의 요한이었다. 그의 이름이 보여주듯이, 요한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슬람 세력이 시리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635년에 다마스쿠스가 비교적 상처를 입지 않고 이슬람 세계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우호적인 가교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할아버지 만수르(Mansour ibn Sarjun)는 지역의 세금관리자로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존 만수르(Mansour ibn Sarjun) 역시 세습이 가능한 궁정의 세금관리자로 살면서, 아들 존에게 비교적 다양한 양질의 교육을 제공했다.
요한의 집안이 아랍 출신의 시리아 기독교 가족이었다는 것에 대하여는 대부분 학자들이 동의한다. 요한은 시칠리아의 고아 출신인 코스마스(Cosmas)와 어린 시절부터 친형제같이 교육을 받았다. 요한은 그의 나이 만 50세 어간이던 725년에 아버지의 직을 이어 일하던 궁정에서 사직하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인근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되었다. 베들레헴에서 남동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마르사바(Mar Saba) 수도원에 안착했고, 이후 735년에 사제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법과 신학과 철학에 관심을 갖고 수도생활과 작품활동에 전념했고, 교회 예전에 쓰이는 찬송가 작곡가로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쓴 찬송가는 지금도 부활절에 비잔틴기독교뿐만 아니라 루터교회에서도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