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13.52
SKU
9791159317767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12/6 - Thu 12/12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12/3 - Thu 12/5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3/01/20
Pages/Weight/Size 128*188*20mm
ISBN 9791159317767
Categories 사회 정치 > 정치/외교
Description
로자 룩셈부르크가 19세기 말, 독일 사민당 내에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모은 책. 1898년부터 99년까지 〈라이프치히 인민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 이 책에서 로자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의 기초가 되는 경제적 관점, 정치적 구성, 사회주의 전망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로자는 이 책에서 베른슈타인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사회개혁을 계급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로자는 이러한 수정주의, 개량주의를 노동운동에 침투한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베른슈타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논박한다. 특히 자본주의가 몰락하지 않으며, 노동자 대중이 자본주의하에서도 그 조건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로자는 베른슈타인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몰락의 불가피성과, 노동자 계급 투쟁과 사회주의 투쟁의 불가피성을 동시에 증명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베른슈타인 비판은, 로자 자신의 입장임은 물론이지만 독일 사민당 내에서 이루어지던 수정주의 비판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몇년 이후의 역사에서 독일 사민당 중앙파는 수정주의와 결합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이 책은 수정주의, 개량주의가 처음 역사 속에 자신의 모습을 명징하게 드러낸 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이 어떻게 투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라는 로자의 질문은 현재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Contents
제1부

1. 베른슈타인의 방법
2. 자본주의의 적응
3. 사회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의 도입
4. 관세 정책과 군국주의
5. 이론의 실천적 결과와 일반적 성격

제2부

1. 경제 발전과 사회주의
2. 경제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
3. 정치권력의 장악
4. 붕괴
5. 이론과 실천에서의 기회주의

해제 ― 로자 룩셈부르크, 영원한 혁명가
1. 왜 로자를 읽는가
2.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
3. 개량주의-수정주의와의 투쟁,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4. 새로운 전략론 ― 대중 스트라이크
5.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6. 한 마리 독수리로서 ― 이후 로자 룩셈부르크의 영향
Author
로자 룩셈부르크,김경미,송병헌
1871년 3월 5일 제정러시아령 폴란드의 자모슈치에서 태어난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혁명가이다. 16세 때부터 지하혁명운동에 참가했으며, 1898년 취리히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895년 독일로 이주하여 「작센 노동자 신문」 「라이프찌히 인민 신문」 등에 참여하면서 독일사회민주당 내의 베른슈타인을 필두로 하는 수정주의자들에 맞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였다.

제2인터내셔널의 파리대회(1901년), 암스테르담대회(1904년0에 참석, 제2인터내셔널의 유력한 좌파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확림했으며, 1905년 러시아혁명이 터지자 바르샤바로 잠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제1차 세계제국주의전쟁을 전후하여 카우츠키 등 독일사회민주당의 중앙파와 결별한 뒤, 카알 리프크네히트와 프라츠 메링 등과 함께 독일공산당의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동맹을 결성했다. 1915년 2월부터 1918년 11월까지 거의 옥중에 있었으며, 독일 혁명의 시작과 함께 석방되어 독일공산당 결성(1918년 12월 말)과 기관지 「적기」간행에 진력했으나 1919년 1월의 베를린봉기 실패 후 체포되어 1월 15일 살해되었다.

이때부터 1월 15일은 세계의 노동자와 평화를 애호하는 인민들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엄숙한 기념일이 되었다. 그날은 '로자 룩셈부르트와 리프크네히트의 날'로 불리며 레닌, 리프크네히트, 룩셈부르크의 머릿글자를 따서 '3L Day'로 명명되었다.

주요저서로 『자본축적론』,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러시아 혁명』이 있다.
1871년 3월 5일 제정러시아령 폴란드의 자모슈치에서 태어난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혁명가이다. 16세 때부터 지하혁명운동에 참가했으며, 1898년 취리히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895년 독일로 이주하여 「작센 노동자 신문」 「라이프찌히 인민 신문」 등에 참여하면서 독일사회민주당 내의 베른슈타인을 필두로 하는 수정주의자들에 맞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였다.

제2인터내셔널의 파리대회(1901년), 암스테르담대회(1904년0에 참석, 제2인터내셔널의 유력한 좌파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확림했으며, 1905년 러시아혁명이 터지자 바르샤바로 잠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제1차 세계제국주의전쟁을 전후하여 카우츠키 등 독일사회민주당의 중앙파와 결별한 뒤, 카알 리프크네히트와 프라츠 메링 등과 함께 독일공산당의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동맹을 결성했다. 1915년 2월부터 1918년 11월까지 거의 옥중에 있었으며, 독일 혁명의 시작과 함께 석방되어 독일공산당 결성(1918년 12월 말)과 기관지 「적기」간행에 진력했으나 1919년 1월의 베를린봉기 실패 후 체포되어 1월 15일 살해되었다.

이때부터 1월 15일은 세계의 노동자와 평화를 애호하는 인민들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엄숙한 기념일이 되었다. 그날은 '로자 룩셈부르트와 리프크네히트의 날'로 불리며 레닌, 리프크네히트, 룩셈부르크의 머릿글자를 따서 '3L Day'로 명명되었다.

주요저서로 『자본축적론』,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러시아 혁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