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광산(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목사고을 나주, 빛고을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은 누구나 그러하듯 인생의 꿈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경험은 끝없는 고뇌의 수렁 속에 빠뜨렸다.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국민을 우롱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학교도 사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사춘기의 방황은 깊어졌다. 광주 동신고등학교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은 어두운 그 시절에 만났기 때문이다. 그 후 무언가에서 해답을 찾으려 갈구하다 1983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데모도 많이 하고 자신과 나라에 대한 고민도 하다가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국대학교 북한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부터 재야단체인 평화연구소에서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 세계사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연구소에서 그러한 세계사적 변화를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그때 시작했던 평화와 통일이라는 화두를 지금도 여전히 붙잡고 살고 있다.
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 정책실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정책실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 코리아연구원 원장, 통일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초대 사무처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통일정책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학생운동, 1980』,『천안함 외교의 침몰』(공저) 등이 있다.
1964년 광산(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목사고을 나주, 빛고을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은 누구나 그러하듯 인생의 꿈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경험은 끝없는 고뇌의 수렁 속에 빠뜨렸다.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국민을 우롱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학교도 사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사춘기의 방황은 깊어졌다. 광주 동신고등학교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은 어두운 그 시절에 만났기 때문이다. 그 후 무언가에서 해답을 찾으려 갈구하다 1983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데모도 많이 하고 자신과 나라에 대한 고민도 하다가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국대학교 북한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부터 재야단체인 평화연구소에서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그 무렵 세계사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연구소에서 그러한 세계사적 변화를 관찰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그때 시작했던 평화와 통일이라는 화두를 지금도 여전히 붙잡고 살고 있다.
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 정책실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정책실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 코리아연구원 원장, 통일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초대 사무처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통일정책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학생운동, 1980』,『천안함 외교의 침몰』(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