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를 위하여

작가 츠바이크, 프로이트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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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6/10/31
Pages/Weight/Size 148*210*30mm
ISBN 9791159310850
Categories 인문 > 심리
Description
“그대, 너무도 소중한 친구. 그대, 너무도 사랑하는 스승.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작가 츠바이크의 사랑과 존경 어린 헌사

시대와 불화한 위대한 사상가와 작가가 이어온 30여 년 우정의 궤적…
평전·서한집·기록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를 확보한 독일어권 작가로, 평전과 심리소설의 대가라 일컬어지는 슈테판 츠바이크. 19세기 말 유럽 문화의 중심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나 문학과 철학,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벨 에포크’의 풍요 속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고 “정신의 모든 대담한 건축물과 윤리의 모든 사원을 일거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던 1차대전을 경험하며 참담함을 맛보아야만 했다. 이후 나치가 득세하면서 전쟁의 암운이 또다시 드리워지자 영국과 미국 등지를 떠돌던 츠바이크는 결국 마지막 망명지 브라질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렇듯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좌절하고 만 비운의 인물이지만 살아생전에 로맹 롤랑,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유수의 예술가 및 학자들과 왕래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같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 그보다 스물다섯 살이 많아 아버지뻘이었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는 30년 넘게 교류하며 연령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었다.

‘무의식’에 주목하여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정신분석의 창시자, 20세기의 지적 패러다임을 뒤바꾼 혁명적인 사상가 프로이트. 1891년 이래로 빈 9구 베르크가세 19번지의 개인 병원에서 신경질환 전문의로 활동하며 연구와 집필을 병행해온 그는 1908년부터 츠바이크와 알고 지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관계는 프로이트가 사망한 1939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책 『프로이트를 위하여』는 그 30여 년 교류의 값진 결과물로, 츠바이크가 쓴 프로이트 평전, 프로이트와 관련된 서평과 일기, 추모 연설문, 회고록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한데 모아 엮은 것이다. 따라서 츠바이크가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의 정신분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했는지 다각적으로 드러나 있다. 특히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되는 서한집은 저작만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서로의 작품에 관해 나눈 내밀한 감상과 의견, 집필 과정, 당시에 불러일으킨 반향은 물론,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비극으로 두 인물이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Contents
추천의 말 작가의 언어로, 철학자의 눈으로
프로이트와 그의 사상을 그려내다 _이창재

1부 프로이트 평전(1931)
들어가는 말
세기말의 상황
성격 초상
출발
무의식의 세계
꿈의 해석
정신분석의 기술
성性의 세계
먼 곳을 향한 황혼의 시선
시대에 통하다

2부 프로이트-츠바이크 서한집(1908~1939)

3부 프로이트에 관한 기록들(1930~1941)

서평 프로이트의 신간 《문명 속의 불만》(1930)
일기 〈2차대전 일기〉(1939) 중에서
연설 프로이트 추모 연설(1939)
회고 《어제의 세계》(1941) 중에서

출처

지그문트 프로이트 연보 / 슈테판 츠바이크 연보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인명 / 찾아보기-용어?작품
Author
슈테판 츠바이크,지그문트 프로이트,양진호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부유한 유대계 방직업자 아버지와 이름난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빈에서 높은 수준의 교양교육과 예술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섬세한 감각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녔던 그는 수많은 고전작품을 읽으며 해박한 지식을 쌓았고, 청소년기에는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의 시집을 탐독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습작기간을 거쳤다. 대학에서 독문학과 불문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을 두루 섭렵했으며,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런 배경으로 스무 살의 나이에 첫 시집 『은빛 현』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드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은빛 현』을 필두로 수많은 소설 및 전기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38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유태인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다.또한 2차 세계대전 이전 백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대중적인 작가이자 다른 나라 언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로 독일/오스트리아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츠바이크는 ‘벨 에포크’라 일컬어지는 유럽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다. 예술과 문화가 최고조로 발달했던 그 시기를 그는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했던 유럽이 한방의 총성으로 촉발된 세계대전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황금 시대의 빛과 영광을 박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구축한 그들 유럽인들이었다. 이 때의 심경은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유럽의 문화사를 기록한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 잘 드러나 있다.

극심한 상승과 하강을 삶을 통해 모두 경험한 이후, 섬세한 그의 심성은 더 이상 부조리한 세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고난의 망명생활 속에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42년 2월 브라질의 페트로폴리스에서 부인과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종종 ‘평화주의자’ 또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평을 받던 그는 “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유로운 죽음을 선택하였다.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쓴 수많은 소설과 평전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상당부분 영화화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예술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예가 천재 감독 웨스 앤더슨의 2014년 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이다. 앤더슨은 이 영화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츠바이크의 소설 '초초한 마음'의 첫 단락을 차용해서 시작하며, 엔딩 크레딧에서 “inspired by the writings of Stefan Zweig”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그 사실을 확고히 했다.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부유한 유대계 방직업자 아버지와 이름난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빈에서 높은 수준의 교양교육과 예술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섬세한 감각과 문학적 감수성을 지녔던 그는 수많은 고전작품을 읽으며 해박한 지식을 쌓았고, 청소년기에는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의 시집을 탐독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습작기간을 거쳤다. 대학에서 독문학과 불문학,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을 두루 섭렵했으며,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런 배경으로 스무 살의 나이에 첫 시집 『은빛 현』으로 문단에 데뷔하여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드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은빛 현』을 필두로 수많은 소설 및 전기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38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유태인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미국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한다.또한 2차 세계대전 이전 백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대중적인 작가이자 다른 나라 언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가로 독일/오스트리아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츠바이크는 ‘벨 에포크’라 일컬어지는 유럽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다. 예술과 문화가 최고조로 발달했던 그 시기를 그는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했던 유럽이 한방의 총성으로 촉발된 세계대전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하게 된다. 황금 시대의 빛과 영광을 박살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구축한 그들 유럽인들이었다. 이 때의 심경은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유럽의 문화사를 기록한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 잘 드러나 있다.

극심한 상승과 하강을 삶을 통해 모두 경험한 이후, 섬세한 그의 심성은 더 이상 부조리한 세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고난의 망명생활 속에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42년 2월 브라질의 페트로폴리스에서 부인과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종종 ‘평화주의자’ 또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라는 평을 받던 그는 “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유로운 죽음을 선택하였다.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쓴 수많은 소설과 평전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상당부분 영화화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예술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예가 천재 감독 웨스 앤더슨의 2014년 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이다. 앤더슨은 이 영화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츠바이크의 소설 '초초한 마음'의 첫 단락을 차용해서 시작하며, 엔딩 크레딧에서 “inspired by the writings of Stefan Zweig”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그 사실을 확고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