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아래 세상이 숨죽이고 있을 때, 청년 장석웅은 전남대 학생들에게 영구집권 음모를 규탄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사건으로 그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고문받게 된다. 평교사가 되어 참교육을 위해 전교조 결성을 주도한 장석웅은 1989년 7월 해직 통보를 받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울며 버스를 가로막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교문을 나서야 했다. 2011년, 전교조 제15대 위원장으로 당선된 그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활동하는 혁신 전교조’를 표방하며 혁신학교운동의 대안을 제안하는 등 국내 교육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갔고, 이명박 정부의 정치탄압에 대항 해 단식투쟁으로 맞서는 등 온몸으로 전교조와 참교육을 지켜낸다.
2013년 전교조 위원장 임기를 마친 후 학교로 복직한 장석웅은 박근혜 퇴진 영암촛불상임대표와 전남공동대표 등을 맡아 새로운 시대 참여를 통한 변화의 물결을 열어간다. 2017년 8월,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어 있는 목포신항에서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너희들의 생명과 미래를 지키고 꿈과 희망을 만드는 일에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라는 약속과 함께 37년 평교사로서 생활을 마무리한다. 이후 교육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도민들로 구성된 민주진보교육감 전남추진위원회로부터 단일후보로 추대되어, 2018년 6월 주민직선 3기 전남교육감에 당선된다.
그의 평교사로서의 삶과 교육감으로서 삶은 결을 달리한 삶이 아니었다. 같은 방향으로 뻗은 다른 길에 서 있는 삶이었다. 지난 4년간 쉼 없는 교육현장 방문과 경청올레를 통해 현장에서 묻고 현장에서 함께 답을 찾으며 ‘학교를 학교답게,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어 아이들의 희망을 지키고자 했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은 교육’이라는 신념으로 도민들과 함께 열악한 교육환경을 극복하고 전남의 새로운 미래교육을 열어가기 위한 그의 ‘끝나지 않은 마지막 수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아래 세상이 숨죽이고 있을 때, 청년 장석웅은 전남대 학생들에게 영구집권 음모를 규탄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 사건으로 그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고문받게 된다. 평교사가 되어 참교육을 위해 전교조 결성을 주도한 장석웅은 1989년 7월 해직 통보를 받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울며 버스를 가로막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교문을 나서야 했다. 2011년, 전교조 제15대 위원장으로 당선된 그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활동하는 혁신 전교조’를 표방하며 혁신학교운동의 대안을 제안하는 등 국내 교육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갔고, 이명박 정부의 정치탄압에 대항 해 단식투쟁으로 맞서는 등 온몸으로 전교조와 참교육을 지켜낸다.
2013년 전교조 위원장 임기를 마친 후 학교로 복직한 장석웅은 박근혜 퇴진 영암촛불상임대표와 전남공동대표 등을 맡아 새로운 시대 참여를 통한 변화의 물결을 열어간다. 2017년 8월,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어 있는 목포신항에서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너희들의 생명과 미래를 지키고 꿈과 희망을 만드는 일에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라는 약속과 함께 37년 평교사로서 생활을 마무리한다. 이후 교육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도민들로 구성된 민주진보교육감 전남추진위원회로부터 단일후보로 추대되어, 2018년 6월 주민직선 3기 전남교육감에 당선된다.
그의 평교사로서의 삶과 교육감으로서 삶은 결을 달리한 삶이 아니었다. 같은 방향으로 뻗은 다른 길에 서 있는 삶이었다. 지난 4년간 쉼 없는 교육현장 방문과 경청올레를 통해 현장에서 묻고 현장에서 함께 답을 찾으며 ‘학교를 학교답게,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어 아이들의 희망을 지키고자 했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은 교육’이라는 신념으로 도민들과 함께 열악한 교육환경을 극복하고 전남의 새로운 미래교육을 열어가기 위한 그의 ‘끝나지 않은 마지막 수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