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구스타프 융은 1930년 가을부터 1934년 봄까지 ‘사이콜로지 클럽 취리히’(Psychology Club Zurich: 1916년에 칼 융 부부와 맥코믹 록펠러(McCormick-Rockfeller)부부가 함께 창설)에서 환자들과 제자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 차례 세미나를 열었다. ‘환상 해석’(Interpretation of Visions)이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한 이 세미나의 내용은 참가자들에게만 엄격히 제한되었으나 1957년에 최종적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사람은 영국인과 미국인, 독일인, 스위스인 등 30명 내지 40명이었다.
이 세미나는 칼 융이 환자가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개성화를 이루도록 이끄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분석 대상이 된 환자는 미국의 화가이자 심리학자 크리스티아나 모건(Christiana Morgan: 1897-1967)이다. 모건이 칼 융과 함께 분석 작업을 벌이는 과정에 경험하게 된 꿈과 공상, 환상 등이 세미나의 자료로 쓰이고 있다. 원형과 자기,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페르소나, 에난티오드로미아 등 칼 융의 주요 개념들이 두루 소개된다. 인간의 정신에서 상징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엿보게 한다.
칼 융은 심리학에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관찰한 내용이 아니면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따라서 철저히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당연히 형이상학이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없다. 칼 융이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무엇이든 환자가 직접 하도록 유도하는 거이 보인다. 환자가 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회복해 가는 과정은 직선 길이 아니고 수없이 회전하면서 조금씩 본질을 찾아 위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길이다.
칼 융의 다른 저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신비주의와 철학, 인류학, 역사 분야에 대한 융의 해박한 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런 만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고 보편적이다. 이 책은 모두가 좁은 분야에 매몰된 상태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인간의 길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철학 강의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칼 융의 ‘환상 해석’ 원고는 방대하다. 이번에 소개되는 『환상 강의』는 『환상 해석』 『환상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되고 남은 나머지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이로써 칼 융의 ‘환상 해석’을 번역하는 작업은 일단 마무리됐다. 칼 융의 강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환상이나 꿈도 하나의 사실이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중히 여겨라. 거기에 당신에게 미래의 길을 알려주는 정보가 가득 들어 있다.”
Contents
[이 책에 대하여]
1강 1933년 5월 3일
2강 1933년 5월 10일
3강 1933년 5월 17일
4강 1933년 5월 24일
5강 1933년 5월 31일
6강 1933년 6월 7일
7강 1933년 6월 14일
8강 1933년 6월 21일
9강 1933년 10월 4일
10강 1933년 10월 11일
11강 1933년 10월 18일
12강 1933년 10월 25일
13강 1933년 11월 8일
14강 1933년 11월 15일
15강 1933년 11월 29일
16강 1933년 12월 6일
17강 1933년 12월 13일
18강 1934년 1월 24일
19강 1934년 1월 31일
20강 1934년 2월 7일
21강 1934년 2월 14일
22강 1934년 2월 21일
23강 1934년 2월 28일
24강 1934년 3월 7일
25강 1934년 3월 14일
26강 1934년 3월 21일
Author
칼 구스타프 융,정명진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